[정읍,고창,전주] 동학역사여행 (1박2일)

코스 중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황토현 전적지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선운사(禪雲寺)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병바위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전주 풍남문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경기전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덕진공원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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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권 1박2일 동학역사여행 가족 연인 친구 체험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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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소개
  • 동학농민혁명기념관
  • 황토현 전적지
  • 선운사(禪雲寺)
  • 병바위
  • 전주 풍남문
  • 경기전
  • 덕진공원

[1일] 동학농민혁명기념관/ 황토현전적지 → 전봉준생가터(전봉준장군 흉상만들기 체험) → 고창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 병바위/책바위
[2일] 전봉준장군고택(사발통문작성체험) → 만석보/백산성 → 풍남문/경기전/덕진공원 → 삼례봉기 역사광장


○ 전봉준장군 생가터
: 1855년 12월3일 고창읍 죽림리 63번지에서 서당 훈장을 하던 전창혁의 아들로 태어나 13세 무렵까지 살던 곳


○ 만석보
: 조병갑이 고부 농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보를 막았는데 이것이 만석보이다. 후에 홍수 피해를 입게 되었는데도 조병갑은 보세를 징수하여 1894년 1월10일 전봉준 등 고부농민들이 고부관아를 점령하고 만석보를 부셔버렸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소개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은 1894년 정읍에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보존하고 알리는 박물관으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동학농민혁명은 한국 근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신분제 폐지와 사회 개혁을 추구한 민중 주도의 혁명이며 한국 근대사의 분수령이 되었다. 기념관은 여러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전시실은 특정 주제와 시대를 다루고 있어 시대적 흐름을 따라 이해할 수 있다. 기념관 내부에는 유물 전시실, 영상실, 체험실 등이 갖춰져 있으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전시 및 유물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는 당시의 역사적 배경, 전개 과정, 주요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1894년 전봉준 장군이 주도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전봉준 장군의 생애와 업적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당시 시대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 유물들은 국가적으로 지정된 문화재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학술적 가치가 높아 역사 연구자들도 주목한다. 기념관은 이 역사적 사건의 배경, 과정, 영향을 종합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년 2회 이상 특별전시회가 개최되어 새로운 역사적 관점을 제시하고, 관광객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교육 프로그램 특히 초중고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문화해설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인성 교육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기념관에서는 학생 단체 방문을 위해 특별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으며, 역사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역사 애호가들과 학생 단체 방문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깊이 있는 역사 학습이 가능하다. 기념관 도서관에는 동학농민혁명 관련 자료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어 연구자들도 이용하고 있다. 전문 해설사의 설명을 통해 역사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할 수 있다. 역사적 의의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은 전북특별자치도의 역사유산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중요한 문화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기념관 주변으로는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적지들이 여러 곳 위치해 있으며, 연계 방문을 통해 역사 현장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정읍이 자랑하는 역사문화 시설로서, 1894년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방문객들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해하고, 민족의 항전 정신을 배울 수 있다. 정읍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담은 상징적 장소로서, 많은 관광객과 학생들에게 깊은 교육적 가치를 제공한다. 출처 1. https://korean.visitkorea.or.kr/search/search_list.do?keyword=동학농민혁명기념관 | 대한민국 구석구석 출처 2. https://blog.naver.com/jeongeupnews | 정읍시 공식 블로그 출처 3. https://blog.naver.com/jbgokr | 전북특별자치도 공식 블로그

황토현 전적지

소개 황토현 전적지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격전지로, 한국 근현대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역사적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동학농민군과 관군 사이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동학농민혁명 역사를 기억하고자 전적지가 조성되어 있다. 전적지 내에는 기념비와 추모 시설이 있으며, 주변에는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설명하는 안내판과 전시 자료가 준비되어 있다. 정읍은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지로 알려져 있으며, 황토현 전적지는 이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교육 장소이다. 추모와 기념 황토현 전적지는 정읍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상징하는 장소로,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격렬한 전투 현장을 기억하고 있다. 전적지에는 추모비와 함께 혁명 정신을 기리는 조각상과 기념 시설이 있어, 방문객들이 역사를 되새길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다. 근처의 동학농민혁명 기념관과 함께 방문하면 정읍의 역사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매년 기념일마다 추모식과 역사 학습 프로그램이 개최되고 있다. 근현대 역사의 의미 황토현 전적지는 전북특별자치도의 근현대 역사를 대표하는 장소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계승하고 전승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의 전투는 전국적인 혁명 운동의 주요 사건 중 하나였으며, 그 역사적 의미는 현재까지 큰 가치를 지닌다. 전적지 방문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과 민중의 저항 정신을 이해할 수 있으며, 역사 교육의 생생한 현장이다. 전북특별자치도의 역사 유산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역사 유산의 보존 황토현 전적지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격전지로, 당시 농민군의 용감함과 저항 정신을 기리는 장소이다. 현장에는 전투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안내판과 추모 시설이 있으며, 방문객들에게 그 시대의 역사를 전달한다. 정읍은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로서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황토현 전적지는 그 역사의 증거이자 상징이다. 역사 학습과 추모를 위해 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의미 있는 장소이다. 출처 1. https://www.jeongeup.go.kr/culture/index.jeongeup | 정읍시 문화관광 출처 2. https://blog.naver.com/PostSearchList.naver | 정읍시 공식 블로그 출처 3. https://blog.naver.com/PostSearchList.naver | 전북특별자치도 공식 블로그 출처 4. https://korean.visitkorea.or.kr | 대한민국 구석구석

전주 풍남문

전주를 상징하는 풍남문 전주를 상징하는 전주 풍남문은 원래 전주부성의 4대문 가운데 남문으로 고려 공양왕 원년인 서기 1389년에 전라관찰사 최유경이 전주부성과 함께 창건했다. 건축양태는 조선 후기의 문루 형식으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형태로 지목되고 있다. 원래 도성이나 읍성, 산성 등은 으레 성문이 있기 마련이고 그 위에 문루를 세우는 것이 중요한 형식이자 관례로 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조 영조 43년(1767)에 당시 성내를 휩쓴 정해년 대화로 불타버려 영조 44년(1768) 전라관찰사 홍낙인이 증건했지만 종전처럼 3층루가 아닌 현 모습으로 수축하여 이때부터 풍남문이라 불렀다.1905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에 의해 전주부성 4대문중 풍남문만 제외한 3대문이 동시에 철거되는 수난을 겪었다. 구조를 보면 화강암을 사용하여 조성된 이 탑은 방형(方形)의 이중(二重) 기단석(基壇) 위에 사방 세 칸의 탑을 쌓았다. 초층에는 민흘림형식을 갖춘 네모꼴의 돌기둥을 설치하고, 기둥머리위에는 평방(平枋)과 창방(昌枋)을 올려놓았으며, 각 중앙칸에는 출입구를 만들어 十자모양의 내부로 통하는 통로를 두었고, 탑 내 중앙의 교차되는 중심에는 바른 네모꼴 모양의 찰주(擦柱)가 있다. 특히 초층(初層)에서 주목되는 것은 네모꼴 기둥의 가공한 기법이 민흘림 양식이며, 우주(隅柱)의 경우 귀솟음 기법을 사용한 것이 매우 특이하다. 또 이 탑의 특징은 목조건물에서 공포(拱包)를 가설하였을 것이나, 이 탑에서는 목재와 같이 기교 있게 공포(拱包)를 조각할 수 없으므로 공포양식을 모방한 3단의 층급받침으로 지붕돌을 받치도록 하였다. 지붕돌은 얇고 넓은데 네 모퉁이가 가볍게 치켜들고 있어서 신라 석탑양식에서는 볼 수 없는 백제 특유의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층 이상은 탑신(塔身)이 얕아지고 각 부분의 가구 수법을 약화 시켰으며, 지붕돌은 폭만 줄여 1층과 같은 수법을 보이고 있다. 5층 이상의 층급받침은 정단에서 4단으로 증가되었다. 그리고 각 기둥과 면석, 창방과 층급받침 등을 모두 별개석 으로 엇물림 쌓기를 하고 있다. 1978년 문루 보수과정에서 옹성의 기단이 풍남문 홍예문으로부터 12m 지점에서 발굴됨에 따라 이 기단대로 연장 97.5m의 여담쌓기와 치석 6,856개로서 옹성 1,933㎡를 축조하여 복원하였다. 전주 풍남문의 누대를 겸한 석문은 성벽을 따라 안쪽으로 내밀게 구형을 쌓고, 이 석축 중앙에 통로를 뚫고 통로 내외면에 무지개끝 석물을 쌓아 윗면에 문루를 설치한 것이다. 이 누대는 너비는 동서 23.6m, 남북 10.6m이며 높이는 17.2m에 이른다. 문루의 서편에는 종각이 있고 좌편에는 포루가 있었다. 문루는 2층의 팔각지붕인데 정면, 측면이 모두 3칸이고 윗층의 정면은 3칸이나 측면은 1칸이다. 1980년 종각과 포루, 전주 풍남문 바깥쪽 출성인 옹성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찾았다. 출처 URL | 전주시문화관광

경기전

전주한옥마을의 상징 경기전 혼불의 작가 최명희씨는 그의 단편소설 ‘만종’에서 경기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고궁(古宮)의 묵은 지붕 너머로 새파란 하늘이 씻은 듯이 시리다. 우선 무엇보다도 그것에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밀밀하였으며, 대낮에도 하늘이 안 보일 만큼 가지가 우거져 있었다. 그 나무들이 뿜어내는 젖은 숲 냄새와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며, 지천으로 피어 있는 시계꽃의 하얀 모가지, 우리는, 그 경기전이 얼마나 넓은 곳인지를 짐작조차도 할 수 없었다.” 경기전은 조선왕조를 연 태조의 초상화, 즉 어진을 모시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전주, 경주, 평양 등의 어진 봉안처를 처음에는 어용전이라 불리었는데, 태종 12년(1412년)에 태조 진전(眞展)이라 하였다가 세종 24년(1442년)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승전이라 각각 칭하였다. 경기전은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광해군 6년(1614년)에 중건되었다. 경기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 봉안과 함께 전주사고(史庫)가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안고 있다. 전주사고가 조선의 역사를 지켜냈기에 그러하다. 풍경이 아름다운 경기전  경기전 안에는 많은 역사적 유적과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경기전 입구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있는데, 이 앞을 지날 때에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다. 태조 이성계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전국 4곳에 보존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고 이곳 전주서고의 조선왕조실록만은 다행히 화를 면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은 역사적, 문화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가까운 곳에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2층에는 차를 마실 공간도 있으니 잠깐 쉬어가는 것도 좋다. 가을 풍경이 특히 아름다운 경기전, 경기전은 주변 경관이 수려해 역사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주목받는 곳이기도 하다. 출처 URL | 전주시문화관광

덕진공원

덕진공원이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동에 있는 공원이다. 전주역 북쪽 3 km 지점에 있는 덕진호 일대의 유원지로, 시민공원이라고도 한다. 덕진호의 유래는 서기 901년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도서방위를 위해 늪을 만들었다는 설이 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전주가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북쪽만 열려있는 탓에 땅의 기운이 낮아 가련산과 건지산 사이를 제방으로 막아 저수함으로써 지맥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전주 시내 중심에 위치한 덕진공원은 전주 시민들에게 있어 하나쯤의 사연을 간직한 추억의 장소이다. 특히 덕진공원이 안고 있는 드넓은 호수인 덕진호에서는 해마다 7월초면 어김없이 덕진호를 수놓아 전국의 여행객들과 사진작가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전주 8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덕진채련(德津採蓮)과 함께 덕진공원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연못인 덕진호에서 펼쳐지는 음악분수도 덕진공원의 빼놓을 수 없는 관람사항이 되었다. 다양한 볼거리로 전주시민들의 추억을 담고 있는 덕진공원. 덕진공원이야말로 전주 시민들의 낭만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라 할 수 있다. 연꽃향기가 가득한 덕진공원에는 신석정, 김해강, 이철균, 백양촌 시인의 시비가 둘러 서 있다. 지역 현대문학의 개척자이자 전북문학사를 빛냈던 문인들을 추모할 수 있는 '전주 문학의 성지'로서의 모습이다. 대대적인 정비공사를 통하여 1998년부터 재개장한 공원의 특색은 마운팅 시공으로 향촌의 작은 언덕을 연상케 한다. 또한 전통 정자와 창포늪을 조성하여 역사성을 극대화 하였고 인공 폭포와 목교를 설치하여 자연친화시설로 시민의 정서에 맞도록 공원을 재조성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단오절에는 이른 아침부터 연못의 물로 부녀자들이 머리를 감고 한 해 건강을 기원하는 단오 창포물 잔치로도 유명하다. 덕진공원안에는 신석정, 김해강 시인의 시비 뿐만 아니라 어린이 헌장, 전봉준 장군상, 전주시민 갤러리 등 덕진공원을 찾는 이들에게 전주의 정취를 안겨주는 문화 공간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덕진공원의 풍경  대부분의 저수지가 관개용으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풍수지리설에 연유하여 만들어진 유래가 독특하다. 동쪽의 건지산, 서쪽의 가련산을 잇는 덕진제에 수양버들 ·벚꽃나무가 늘어서고, 5월이면 창포와 연꽃이 수면을 메우는데, 특히 덕진 연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끝없이 펼쳐진 연꽃의 모습은 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서정적인 풍경을 이룬다. 덕진공원 내 시설 공원 내에는 전주이씨의 시조인 신라 사공 이한을 모신 조경단을 비롯하여 취향정과 동물원 등이 있고, 수영장 ·테니스코트 등 각종 위락시설도 갖추고 있으며, 특히 호반을 가로지르는 현수교는 경관을 돋우는 명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