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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메밀밭에서 '도깨비 신부' 되어볼까

코스 중 넓은들 학원농장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고창 무장현 관아와 무장읍성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고인돌 박물관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고창읍성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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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소개
  • 넓은들 학원농장
  • 고창 무장현 관아와 무장읍성
  • 고인돌 박물관
  • 고창읍성

학원농장→무장현 관아와 읍성→고인돌박물관→고창읍성

넓은들 학원농장

소개 공음면 선동리에 위치한 학원농장은 면적이 30만여 평으로 1994년 관광농원으로 지정되었다. 봄에는 수십만 평의 완만한 구릉지대에 펼쳐진 청보리밭으로, 가을에는 마치 구름이 내려앉은 듯한 하얀 메밀꽃밭으로 유명하다. 학원농장의 청보리가 가장 푸르고 파란 이삭을 틔워내는 시기는 여름이 들어선다는 입하 전후이며, 메밀꽃은 9월 초부터 피기 시작하여 9월 말까지 이어진다. 이 밖에도 화훼용 유리온실과 묘목장, 각종 과수단지, 잔디구장, 식당, 숙박시설도 갖추어져 있어 드넓은 자연을 벗 삼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2004년부터 매년 4월에 고창청보리밭 축제가 이곳에서 개최된다. 축제/행사 정보 1) 청보리밭 축제 시기 - 매년 4~5월 내용 - 보리밭 사잇길 걷기, 보리피리 만들어 불기, 보리밭 속 음악감상, 민속공연놀이, 1박2일 캠프수련회 2) 해바라기 축제 - 매년 8월 3) 메밀밭 축제 - 매년 9월 상시 체험프로그램 1) 놀이체험 - 농촌민박체험, 영화촬영지 방문 등 2) 만들기체험 - 짚풀공예, 두부만들기, 보리차 만들기 계절별 체험프로그램 1) 봄 - 청보리밭 축제, 고사리.산나물 채취, 보리수확, 보리경관감상, 고사리 수확,고추심기, 보리화분만들기, 등산 2) 여름 - 모내기체험, 복분자수확체험, 오디수확체험, 수박체험, 원두막체험, 해바라기, 농촌캠프 체험 3) 가을 - 메밀꽃축제, 고구마수확, 호박따기, 벼수확, 허수아비 만들기, 도리깨질, 콩구워먹기, 두부만들기 4) 겨울 - 짚풀공예, 두부만들기, 고구마, 감자, 보리차 만들기, 농촌민박체험, 영화촬영지 방문 ※ 체험 내용은 사정에 따라 변동 가능하니 문의 후 방문

고창 무장현 관아와 무장읍성

개요 1991년 2월 26일 사적 제346호로 지정되었다. 옛 무장현(茂長縣)의 객사(客舍)와 동헌(東軒), 읍성을 포함한다. 무장읍성은 1417년(태종 17) 무장진 병마사 김노(金蘆)가 왜구(倭寇)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평지성으로, 길이 약 1.2km이다. 동문은 터만 있고 남문인 진무루(鎭茂樓)가 남아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건물이다. 남문 주위에 석축이 남아 있고, 성 주위에는 너비 4m, 길이 574m 정도의 해자 흔적이 있다. 성 안에는 객사(전남유형문화재 34)와 동헌(전남유형문화재 35)이 남아 있다. 소개 무장면 성내리에 있는 이 성은 1991.2.21 사적 제346호로 지정되었으며, 성의 남문인 진무루에서 무장초등학교 뒷산을 거쳐, 해리면으로 가는 도로의 좌편까지 뻗어 있는데 성의 둘레는 약 1,400m, 넓이는 43,847평이다. 조선 태종 17년(1417)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 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만여 명을 동원, 흙과 돌을 섞어 축조하였다. 성내에는 객사, 동헌, 진무루 등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고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유구들이 산재해 있다. 진무루 후경성문 위엔 진무루라는 한자가 적혀져 있는 현판이 걸려있다. 성은 허물어져 객사와 동헌, 남문인 진무루가 전해질 뿐, 동문과 해자 사직단 등은 흔적만 남아 있다. 이 성은 원래 돌로 축적한 석성이였으나 훗날 허물어진 곳을 흙으로 보강하여 토성이 되었다고 한다. 1915년에 발견된 「무장읍지」에 의하면 조선 태종 17년(1417)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 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0,000여 명을 동원하여 그 해 2월부터 5월까지 만4개월 동안에 축조했다고 전한다. 무장객사 건물은 조선시대 무장현의 객사로 쓰이던 것으로 선조 14년 (1581)에 건립하였다. 객사는 궐패를 모셔두고 현의 수령이 매달 초 하루 보름에 배례하는 정청과 왕명으로 지방에 내려오는 벼슬아치들의 숙소로 쓰이는 좌, 우헌으로 구성된다. 이 객사의 정청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초석 석재 하부는 네모지게 상부는 반구형으로 다듬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운 외에 별다른 특징은 없다. 우헌은 정청보다 지붕을 낮게 꾸미어 건물의 격식을 낮추었다. 이밖에 외대문 중문과 좌 · 우량이 있었으나 남아있지 않다. 석축에 오르내리는 돌계단 등에도 호랑이, 구름 무늬 등을 양각해 놓아서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건물 정면의 정원이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객사의 건물은 면사무소로 사용하면서 일부 형질을 변경했던 것을 1990년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무장동헌 무장현의 치소로 쓰이던 건물로 1565년(명종20)에 건립되었으며 여러차례 중수를 거쳐 최근에는 무장초등학교의 교사로 쓰이면서 변경되었던 것을 1984년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였다. 정면 6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익공집으로 높이 45cm의 석축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공포의 형태는 조선 후기의 평범한 2익공으로 쇠서의 곡선이 날카롭고 장식이 가미되어 있다. 특히 다른 건물에 비해서 기둥의 높이가 특별히 높은 것이 특징인데 관아로서의 위엄을 살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고인돌 박물관

고인돌 박물관 개요 우리나라에는 약 30,00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고, 그 중에서 고창에는 약 2,000여 기가 있으며, 고창고인돌유적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밀집도가 높고,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는 특색이 있다. 고인돌 박물관 소개 우리나라에는 약 30,00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고, 그 중에서 고창에는 약 2,000여 기가 있으며, 고창고인돌유적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밀집도가 높고,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는 특색이 있다.고창고인돌유적은 1965년 문화재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수차례의 발굴 및 지표조사, 국제학술 심포지움 등을 개최하여 역사적 고증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1994년 12월 문화재로 지정(사적 391호)되었고,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고창고인돌유적을 더욱 체계적으로 보존 전승시켜 후세의 산 교육장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우리군에서는 2004년 12월에 고창고인돌박물관의 시작을 알리는 첫 삽을 들어, 2008년 9월 25일 개관하게 되었다. 고창고인돌박물관은 청동기시대의 각종 유물 및 생활상과 세계의 고인돌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기에 여러분들에게 최고의 감동과 만족을 드릴 것이며, 우리 역사의 바탕이 되었던 선사인들이 남긴 삶의 흔적을 찾아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탄생한 국내 유일의 고창고인돌박물관이 여러분에게 아득한 시절의 옛 이야기를 들려 드릴 것이다. 편안한 학습과 정신적인 휴식을 드리는 고창고인돌박물관에서 무한한 선사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기 바란다. 해설이 있는 고인돌 박물관 역사여행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고인돌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 청동기 시대의 유물 및 생활상, 고인돌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담고 있어 시간여행을 하는 듯 생동감이 넘친다. 새롭게 단장한 고인돌 박물관 2층 고인돌을 운반하는 고창 선사인들의 모습을 실물크기로 재현한 모습과 청동기시대의 움집제작, 도구제작, 농경생활, 운곡리 고인돌 모습과 고창 선사인들의 삶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새롭게 단장한 대형 빔프로젝트 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다. 2층 전시관 전체 360도 모든 공간을 활용하여 실감나게 표현하여 그때 당시의 삶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구성하였다.

고창읍성

고창읍성은 자연석으로 만든 성곽으로 사적 제145호로 지정되었으며 모양성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석성으로, 고창의 방장산을 둘러싸고 있다. 읍성임에도 불구하고 산을 둘러 성을 쌓았기 때문에 파괴되지 않고 비교적 잘 보존된 성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성이다. 고창읍성은 여자들이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여자들만이 참여하는 성밟기 행사가 매년 이루어진다. 성밟기 놀이는 마을의 평안과 개인의 액막이를 겸하는 목적도 있고, 외적을 방비하는 성을 1년에 한 번씩 점검하고 발로 성을 밟아 견고하게 다지는 목적도 있다. 고창읍성의 성밟기는 머리에 손바닥만한 돌을 이고 3번을 도는데, 한 바퀴를 돌면 다리병이 낫고, 두 바퀴를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를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전설이 있다. 이렇게 쌓인 돌은 유사시에 좋은 무기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성내에는 1871년에 세운 대원군 척화비가 서 있고 읍성 앞에는 조선 후기 판소리의 대가인 신재효의 생가가 있다. 조선시대 고창현의 읍성으로서, 장성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 기지의 역할을 하였다. 전래풍속_답성(성밟기)놀이 답성(성밟기)놀이 성을 밟으면 병이 없어 오래살고 저승길엔 극락문에 당도한다는 전설 때문에 매년 답성놀이 행사가 계속되고 있으며, 성밟기는 저승문이 열리는 윤달에 해야 효험이 많다고 하며 같은 윤달이라도 3월 윤달이 제일 좋다고 한다. 또한 엿새날이 저승문이 열리는 날이라고 하여 초엿새, 열엿새, 스무엿새날에 답성 대열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리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 한다."고 한다. 성을 돌 때는 반드시 손바닥만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돌아 성 입구에 다시 그 돌을 쌓아 두도록 되어 있다. 고창 읍성이 아낙네들의 힘만으로 축조되었다는 전설적 사연으로 답성도부녀자들 만의 전유민속이 되었지만 흙 한줌, 돌 한 개도 모두가 부녀자들의 손과 머리로 운반, 구축되었던 당시의 대역사를 되새겨 보는 뜻으로 돌을 머리에 이고 도는 풍습이 남아있다. 또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도는 관습은 여인네들의 체중을 가중시켜 성을 더욱 단단히 다지게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깊은 뜻은 이 성곽의 축성 배경이 왜침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유사시의 석전에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예지로서 머리에 인 돌을 성안에 쌓아 두고갔다는 전설도 모두가 호국의 예지를 빛내 주는 이야기들이다. 고창군에서는 답성민속을 기리기 위해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을 군민의 날로 정하고「모양성제」와 함께 답성놀이를 재현하고 있다. 전래풍속_수문장 재현 수문장 재현 음력 9월 9일을 전후하여 4일간 '모양성제'가 열리며, 이때 조선시대 관군복장을 갖춘 수문장이 고창읍성을 수호하는 장면을 재현된다. 고창 읍성의 성곽 주위에 수십개의 옛 진영 깃발을 꽂아 고을수령(현감)이 재임하던 시절 관아의 위엄을 갖춰놓고 형형색색의 멋진 조선시대 관군복에 칼을 든 수문장과 흑백색의 순라복장에 창을 든 포졸을 공북루에 배치했다. 특히, 스스로 관군이 되어보기를 원하는 관광객을 위해 관리사무소에 관군복을 비치해 놓고 이를 빌려줌으로써 사진촬영을 통해 관군으로서의 체험도 직접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도 마련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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