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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부안] 교과서에 나오는 고인돌을 찾아서

코스 중 고창읍성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고인돌 박물관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고창선운산도립공원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곰소염전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내소사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신재생에너지 테마파크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새만금 홍보관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고창읍성의 대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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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권 1박2일 With 미슐랭코스 가족 친구 체험 학습
여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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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소개
  • 고창읍성
  • 고인돌 박물관
  • 고창선운산도립공원
  • 곰소염전
  • 내소사
  • 신재생에너지 테마파크
  • 새만금 홍보관

세계적인 여행안내서 미슐랭 그린 가이드가 소개한 만점짜리 전북의 명소를 수학여행에서 만나요!
청동기문화가 살아있는 고창 고인돌군락지!


○ 1일
고창읍성→고인돌유적지→고인돌박물관→중식→학원관광농장→체험프로그램→선운사도립공원(석식, 숙박)
○ 2일
조식→선운사 산책→곰소염전→내소사→중식→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새만금→집

고창읍성

고창읍성은 자연석으로 만든 성곽으로 사적 제145호로 지정되었으며 모양성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석성으로, 고창의 방장산을 둘러싸고 있다. 읍성임에도 불구하고 산을 둘러 성을 쌓았기 때문에 파괴되지 않고 비교적 잘 보존된 성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성이다. 고창읍성은 여자들이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여자들만이 참여하는 성밟기 행사가 매년 이루어진다. 성밟기 놀이는 마을의 평안과 개인의 액막이를 겸하는 목적도 있고, 외적을 방비하는 성을 1년에 한 번씩 점검하고 발로 성을 밟아 견고하게 다지는 목적도 있다. 고창읍성의 성밟기는 머리에 손바닥만한 돌을 이고 3번을 도는데, 한 바퀴를 돌면 다리병이 낫고, 두 바퀴를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를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전설이 있다. 이렇게 쌓인 돌은 유사시에 좋은 무기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성내에는 1871년에 세운 대원군 척화비가 서 있고 읍성 앞에는 조선 후기 판소리의 대가인 신재효의 생가가 있다. 조선시대 고창현의 읍성으로서, 장성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 기지의 역할을 하였다. 전래풍속_답성(성밟기)놀이 답성(성밟기)놀이 성을 밟으면 병이 없어 오래살고 저승길엔 극락문에 당도한다는 전설 때문에 매년 답성놀이 행사가 계속되고 있으며, 성밟기는 저승문이 열리는 윤달에 해야 효험이 많다고 하며 같은 윤달이라도 3월 윤달이 제일 좋다고 한다. 또한 엿새날이 저승문이 열리는 날이라고 하여 초엿새, 열엿새, 스무엿새날에 답성 대열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리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 한다."고 한다. 성을 돌 때는 반드시 손바닥만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돌아 성 입구에 다시 그 돌을 쌓아 두도록 되어 있다. 고창 읍성이 아낙네들의 힘만으로 축조되었다는 전설적 사연으로 답성도부녀자들 만의 전유민속이 되었지만 흙 한줌, 돌 한 개도 모두가 부녀자들의 손과 머리로 운반, 구축되었던 당시의 대역사를 되새겨 보는 뜻으로 돌을 머리에 이고 도는 풍습이 남아있다. 또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도는 관습은 여인네들의 체중을 가중시켜 성을 더욱 단단히 다지게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깊은 뜻은 이 성곽의 축성 배경이 왜침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유사시의 석전에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예지로서 머리에 인 돌을 성안에 쌓아 두고갔다는 전설도 모두가 호국의 예지를 빛내 주는 이야기들이다. 고창군에서는 답성민속을 기리기 위해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을 군민의 날로 정하고「모양성제」와 함께 답성놀이를 재현하고 있다. 전래풍속_수문장 재현 수문장 재현 음력 9월 9일을 전후하여 4일간 '모양성제'가 열리며, 이때 조선시대 관군복장을 갖춘 수문장이 고창읍성을 수호하는 장면을 재현된다. 고창 읍성의 성곽 주위에 수십개의 옛 진영 깃발을 꽂아 고을수령(현감)이 재임하던 시절 관아의 위엄을 갖춰놓고 형형색색의 멋진 조선시대 관군복에 칼을 든 수문장과 흑백색의 순라복장에 창을 든 포졸을 공북루에 배치했다. 특히, 스스로 관군이 되어보기를 원하는 관광객을 위해 관리사무소에 관군복을 비치해 놓고 이를 빌려줌으로써 사진촬영을 통해 관군으로서의 체험도 직접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도 마련해 놓고 있다.

고인돌 박물관

고인돌 박물관 개요 우리나라에는 약 30,00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고, 그 중에서 고창에는 약 2,000여 기가 있으며, 고창고인돌유적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밀집도가 높고,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는 특색이 있다. 고인돌 박물관 소개 우리나라에는 약 30,00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고, 그 중에서 고창에는 약 2,000여 기가 있으며, 고창고인돌유적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밀집도가 높고,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는 특색이 있다.고창고인돌유적은 1965년 문화재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수차례의 발굴 및 지표조사, 국제학술 심포지움 등을 개최하여 역사적 고증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1994년 12월 문화재로 지정(사적 391호)되었고,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고창고인돌유적을 더욱 체계적으로 보존 전승시켜 후세의 산 교육장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우리군에서는 2004년 12월에 고창고인돌박물관의 시작을 알리는 첫 삽을 들어, 2008년 9월 25일 개관하게 되었다. 고창고인돌박물관은 청동기시대의 각종 유물 및 생활상과 세계의 고인돌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기에 여러분들에게 최고의 감동과 만족을 드릴 것이며, 우리 역사의 바탕이 되었던 선사인들이 남긴 삶의 흔적을 찾아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탄생한 국내 유일의 고창고인돌박물관이 여러분에게 아득한 시절의 옛 이야기를 들려 드릴 것이다. 편안한 학습과 정신적인 휴식을 드리는 고창고인돌박물관에서 무한한 선사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기 바란다. 해설이 있는 고인돌 박물관 역사여행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고인돌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 청동기 시대의 유물 및 생활상, 고인돌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담고 있어 시간여행을 하는 듯 생동감이 넘친다. 새롭게 단장한 고인돌 박물관 2층 고인돌을 운반하는 고창 선사인들의 모습을 실물크기로 재현한 모습과 청동기시대의 움집제작, 도구제작, 농경생활, 운곡리 고인돌 모습과 고창 선사인들의 삶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새롭게 단장한 대형 빔프로젝트 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다. 2층 전시관 전체 360도 모든 공간을 활용하여 실감나게 표현하여 그때 당시의 삶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구성하였다.

곰소염전

조선시대 이곳 소금은 쌀과 함께 노량진으로 보내져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위치한 곰소염전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천일염지인 이곳은 바다와 인접한 다른 염전과 달리 곰소만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에 줄포만에서 곰소만까지 화염(바다물을 끓여 만든 소금)을 만들어  남포리에 있는 사창에 보관하였다가 건모포(구진)에서 쌀과 함께 노량진으로 보내졌다.      지금의 곰소염전은 일제말기에 만들어졌으며, 해방 이후 천해조건의 자연의방법으로 곰소염전의 천일염을 생산하였으며,  처음엔 토판에서 옹기판으로 현재는 타일판으로 생산하고 있다.     촘촘한 바둑판 모양으로 개펄을 다져서 만든 염전에서 소금은 보통 3월 말에서 10월까지 생산되는데  5, 6월에 소금 생산량이 가장 많고 맛도 좋기 때문에 이 시기가 염부들에게는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다.    곰소만의 입지 조건상 바닷물에 미네랄이 많기 때문에 소금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다른 곳에 비해 약 10배가량의 미네랄이 포함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갯벌이 발달된 곰소염전 일대를 포함하여 채석강에서 고창까지 이어진 연안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갯벌이 발달해 있다.    영광굴비로 잘 알려진 칠산 바다의 한 자락이 내륙 깊숙이 들어온 천혜의 입지조건을 가진 최대의 조기잡이 어장이기도 했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으로 곰소나 줄포 외에도 사포, 후포 등 여러 포구가 발달했었다.

내소사

사람과 자연과의 동화 능가산내소사 관음봉 아래에 곰소만의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며 자리하고 있는 천년고찰 내소사 소사모종 관음봉 아래에 곰소만의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며 자리하고 있는 천년고찰 내소사 경내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해질 무렵 어둠을 뚫고 고즈넉한 산사에서 울려퍼지는 저녁 종소리에 신비로운 정경을 제3경이라 친다. 무더웠던 여름 어느날 새벽이라도 좋았을 것이다. 흰눈이 가득내렸던 겨울이라도 운치가 있었을 것이다. 달콤했던 20대 첫사랑의 손을 잡고 처음 걸었어도 행복했을 것이며, 40대 늦은 오후 아내의 손을 잡고 걸어도 행복했을 것이다.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전나무길 위에 새벽의 빛이 내려앉아도 그만의 달콤함이 스며들었을 것이며, 한해의 마지막 달 눈밭의 전나무길도 고즈넉하고 좋았을 것이다.   내소사는 변산반도의 남쪽, 세봉 아래에 자리한 사찰로 삼면이 산으로 포근하게 둘러싸인 곳에 위치하고 있다. 내소사는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차분한 사찰로,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 앞까지 이어지는 전나무 숲길이 유명하다. 약 1km 에 못 미치는 길이지만 가늘고 곧게 뻗은 전나무들이 시원한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다. 이 전나무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천왕문까지의 짧은 길은 단풍나무와 벚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어 봄, 가을이면 환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경내로 들어서면 대웅보전이 단연 유명한데, 대웅보전 자체가 보물 제291호로 지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대웅보전의 꽃문살 역시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대웅보전의 연꽃과 국화 문양의 꽃 창살 사방연속무늬는 내소사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데, 우리나라 장식 문양 중 최고로 평가되는 꽃 창살은 고유의 나무빛깔과 나뭇결 위에 그대로 수놓아져 있어 절제의 미가 돋보인다.   햇살이 좋은 날, 내소사를 돌아보고 전나무길을 걸어나오면 마음까지 정화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절이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천왕문에 이르기까지 전나무 숲길이 길게 이어져 있는데, 침엽수 특유의 맑은 향내음은 속세의 찌든 때를 씻어내기에 적격이며, 사색하기에도 더 없이 좋은 공간이다. 내소사 대웅보전 대웅보전 안에는 석가 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후불탱화, 지장탱화 및 후불벽화로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인간의 솜씨를 넘은 성스러운 모습이다. 관음보살님의 눈을 보면서 좌 우로 왔다 갔다 해보면 관음보살님 눈동자가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데(물론 사람에 따라 안보일 수도 있다.), 눈동자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속설이 있다. 내소사 단청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291호로 규모는 정면 3칸·측면 3칸으로, 다포 양식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건물의 앞쪽에 달린 문살은 꽃무늬로 조각하였다. 단청은 전체적으로 내·외부 모두 금단청 형식으로 용문양을 비롯해 학, 봉황, 주악천인, 매화도 등이 그려진 계풍별화와 나한도가 그려진 판벽화, 그리고 불상이 표현된 포벽화 등 다양한 소재의 문양과 회화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백의관음보살좌상 대웅보전 삼존불을 모신 불단 후불벽면에는 전체 가득히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이 벽화는 국내에 남아 있는 백의관음보살좌상으로는 큰 것이어서 더욱 귀중하다. 백의관음보살좌상의 눈을 보고 걸으면 눈이 따라오는데 그 눈을 바라보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대웅보전의 꽃문살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 문살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우리나라 장식무늬의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꽃살은 나뭇결이 그대로 도톰하게 살이 오른 것 같아 더욱 아름답다. 대웅보전의 절묘한 꽃잎 문살은 꽃 한잎 한잎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며 그 예술성은 다른 곳에서 예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독특하고, 여섯 잎 보상화를 조각하며 기묘하게 맞추어 나간 연속문양 솜씨는 감탄을 부른다. 고려동종 고려 고종 9년(1222)에 내변산에 소재한 청림사에서 제작되었으나 청림사가 폐사된 후 오랫동안 매몰되었다가 조선 철종 1년(1850) 내소사에 옮겨진 것으로 전형적인 고려후기의 동종이다. 영산회괘불탱 야외에서 큰 법회나 제를 지낼 때 걸어놓고 예배하는 괘불(掛佛)로서, 1700년(숙종 26)에 제작된 영산회상 괘불이다. 영산회상이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와 제자들을 그린 불화를 말하는데, 중앙에는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두른 거대한 석가모니불이 붉은 법의를 걸치고,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배부근으로 올리고 서 있다. 이 괘불탱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 앞쪽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뒤쪽 좌우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및 다보여래, 아미타여래 등이 모두 석가모니를 향하여 시립하고 있다. 이 괘불탱은 각 존상의 광배 안에 존상의 명칭을 적어 놓아 이후 다른 괘불의 존상 명칭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백지묵서묘법연화경 백지묵서묘법연화경은 1415년(태종 15) 이씨 부인이 남편 유근(柳謹)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제작한 묘법연화경의 필사본으로 모두 7권 7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지는 감지(감색으로 물들인 종이)에 금니(금박의 가루로 그림이나 글씨를 쓰는데 쓰임)로 외곽을 두르고 내부의 4매의 연화문을 배치한후 그 안에 책이름을 쓰고 백지 위에 법화경의 본문을 써 내려갔으며, 글씨는 한면에 6행씩으로 한 행에 17~19자의 행당 자수는 일정치 않으나 제 1권에는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부처님과 권속들을 섬세하고 정교한 필선과 능숙한 솜씨로 그려낸 변상도가 있다. 건실한 필치가 돋보이는 이 사경은 조선시대 초기의 사경으로서 완전하게 보존된 보기 드문 일품에 속한다 하겠다 . 현재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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