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치즈마을은 한국 치즈의 원조 임실치즈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치즈마을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벨기에 출신 디디에세스테벤스(한국명: 지정환) 신부와 심상봉목사, 이병오 이장의 선구자들과 주민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치즈마을의 시작은 1966년 지정환 신부님이 산양 두 마리를 키우면서 치즈만들기를 시작한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느티나무로 마을가꾸기를 한 결과 느티마을로 불리다가 마을총회를 통해 치즈마을로 개창하게 되었다.
창건 연대와 당시의 위치는 알 수 없으나, 현 위치에 이건된 것은 1413년(태종 13)이다. 이후의 연혁도 고찰할만한 문헌적 자료가 없으며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주로 조선말 고종 이후의 것뿐이다. 철종 5년(1854)에 김성근 현감에 의하여 대성전이 크게 중수되고 고종 15년(1878)에 다시 교궁이 수리되고 고종 20년(1883) 한기석 현감에 의해서 서재가 크게 수리되었고 고종 22년(1885)에 다시 동재가 중수되었다. 향교에 보관되어 있는 중수기에 의하면 이후 임실향교는 고종 31년(1894), 광무 11년(1887), 1916년, 1919년, 1928년, 1935년, 1941년 등 수차에 걸쳐 다시 중수되었다. 근래에 이르러서 1988년 대성전을 보수하고, 명륜당 마루공사, 번와 등을 실시하였고, 1986년 서재와 명륜당을 보수하였다.
임실읍 성가부락 뒷산에 해마다 백로 천여마리가 날아들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는 이 백로들은 매년 경칩 때가 되면 떼지어 이곳에 날아들어 서식하다가 남쪽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때 5천여평 되는 소나무 숲에 둥지를 틀고 내려앉은 모습이 마치 선경(仙境)을 방불케 하여 각양각지에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까지도 이 장관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찾아오기도 한다.
임실에서 남원으로 가는 춘향로로 10km쯤 가면 오수면이 나온다. 오수라는 지명은 이 고장에 구전되어온 전설과 관련되어 '보은의 개'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오수 시장 옆에 있는 원동산 공원에는 의견비와 동상을 세워, 주인에 대한 개의 충성과 의리를 기리고 있다. 최근에는 오수에서 임실쪽 1.2km지점 4차선 도로변 오암리에 새로운 의견상을 세워 작은 공원으로 조성하여 휴식공간으로도 이용하고 있다.
1940년경 붉은 벽돌을 이용하여 원기둥 모양으로 지은 높이 12m, 하부 지름 2.4m의 망루이다. 전국에 남아 있는 망루 가운데 가장 높으며 면소재지 한복판의 임실경찰서 오수지구대 앞마당에 서 있다. 주변 지역의 화재를 감시하고 빨치산 경계 등 비상 상황이나 야간 통행금지를 알리는 데 사용되었다.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獒樹面) 오수리(獒樹里)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불. 1979년 12월 27일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86호로 지정되었다. 하나의 암석으로 된 석불로 아랫부분이 땅속에 묻혀 있어 지대석이나 단 없이 맨땅 위에 서 있다. 조성연대나 내력에 관한 기록은 없다.
고려말 1352경 오수면에 해경대사와 월산대사가 창건하였다 하여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해월암이라 이름하였다. 본전은 ㄱ자형의 팔각 우진각건물이고 산신각은 정면 측면 각각 1칸의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1556년(명종 11년)7월 20일 남원부사가 중건했고 1747년(영조 23년) 5월 15일에는 거사 양정봉이 중수하고 다시 1858년(철종 9년)과 1915년에 중수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무가 우거져 신포정과 잇고 있어 이른 봄의 상춘객과 여름의 피서 인파가 몰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