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남원] 아름다운 풍관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1일 코스

코스 중 광한루원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춘향테마파크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만인의총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만복사지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국악의성지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실상사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남원혼불문학관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광한루원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춘향테마파크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만인의총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만복사지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국악의성지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실상사의 대표 이미지
코스 중 남원혼불문학관의 대표 이미지
연관태그
남부권 당일 가을 유적지 체험 가족 연인 친구 나홀로 관람 체험 학습
여행후기
☆☆☆☆☆ (0)건
코스소개
  • 광한루원
  • 춘향테마파크
  • 만인의총
  • 만복사지
  • 국악의성지
  • 실상사
  • 남원혼불문학관

광한루원 → 춘향테마파크(향토박물관) → 만인의총 → 만복사지 → 국악의성지 → 실상사 → 혼불문학관


춘향테마파크

사랑의 테마가 있는 관광지로 조성한 곳!    남원시 어현동 남원관광지내에 소재한 곳(3만 5천평 규모)으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의 촬영 장소를 포함하여 사랑의 테마가 있는 관광지로 조성한 곳이다. [춘향뎐]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속에 담아내 과거의 사랑과 이제 사랑을 시작하는 이들이 사랑의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조성돼 있고 만남의 장, 맹약의 장, 춘향뎐 영화세트장, 축제의 장 등 사랑의 5개 마당으로 춘향테마의 일대기를 재현하고 있다. 또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완성된 동헌, 관아, 내아, 월매집, 부용당, 옥사정을 비롯해 조선 중기 서민들의 삶이 깃든 고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조선 중기 서민문화와 춘향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다.   만남의 장 전통의 미와 현대적 편의 시설로 맞이하는 진입부인 만남의 장에는 테마파크 종합안내와 바닥조명분수, 춘향마당, 종합상품관, 전통문화체험관 등이 있다.   맹약의 장 테마파크를 방문한 모든 관광객의 안녕과 사랑을 맹약하는 사랑의 담장, 맹약의 단, 그네터 등이 있다.   사랑, 이별의 장 춘향의 고난과 순결한 사랑의 완성을 전개해 놓은 곳으로 조선 중기의 동헌을 복원해 놓았으며 춘향뎐의 주요장면이 미니어쳐와 실제 크기로 재현되어 있으며 임권택감독의 춘향뎐 촬영 세트장, 춘향과 몽룡이 첫날밤을 보낸 부용당과 월매집, 공방, 관광객이 직접 붓글씨를 쓸 수 있는 글방 등이 있다.   시련의 장 춘향의 가슴 아픈 이별과 옥중 생활을 재현한 옥사정과 관아 형태가 복원되어 있다.   축제의 장 축제 행사의 장, 단체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휴게 광장과 야외 공연장이 조성된 공간이다. 

만복사지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 배경지 만복사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는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실려있는 단편 소설이다. 김시습은 계유정난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사건) 때,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며 이후 승려의 길을 걷게 된 생육신 중 1명이다. 계유정난 이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유랑 생활을 하다가 경주 금오산에서 『금오신화』를 저술했다고 한다. 한때 만복사는 남원에서 가장 큰 절로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만복사는 승려들이 저녁 시주를 마치고 돌아오는 승려들의 행렬은 남원 8경으로 손꼽힐 만큼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당시 만복사의 규모가 얼마나 거대했는지를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러던 1597년 정유재란, 남원성이 왜군으로부터 함락당하면서 찬란했던 만복사는 사라지게 된다. 1678년 남원 부사 정동설이 만복사를 재건하려 했지만, 워낙 규모가 컸던 절이었기에 승려가 거주할 수 있는 방 2칸만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후 만복사지의 기록은 사라졌다. 1872년 에 만복사라 표시되어 있지 않아, 이전에 완전히 폐사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비록 만복사지는 폐사지로 전락해버렸지만, 만복사의 위엄을 느낄 수 있는 보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먼저 만복사지 입구에는 석인상이 있다. 원래 석인상 2개가 있었지만, 도로가 생기면서 하나는 현재의 위치로 다른 하나는 남원향토박물관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복사지는 소원을 간직했던 지역주민, 저녁 시주를 마치고 돌아오는 승려, 무거운 돌을 짊어졌던 노동자, 국가의 명복을 빌었던 관료의 숨결에 의해 움직이는 자리가 되었다.

국악의성지

전통 국악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는 남원 국악의 성지 민족의 영산 지리산 자락 운봉에 위치하고 있는 국악의 성지는 우리 민족의 전통과 혼이 담긴 국악의 본 고장이요, 성지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국악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염원을 모아 조성하였다. 국악은 우리 민족의 역사이고 세계가 인정한 문화유산이며 우리민족의 혼이 살아 숨 쉬는 살아있는 역사이다. 특히 남원은 판소리 다섯마당 중 춘향가와 흥부가의 배경지가 될 만큼 예로부터 국악의 산실이었으며 오늘날 동편제 판소리를 정형화한 가왕 송흥록이 태어난 유서 깊은 곳이다. 동편제 소리의 발상지 이며 춘향가 흥부가의 배경지로서 국악의 역사가 보존 전승되어온 국악 본고장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판소리의 유네스코 세계문형문화유산 등록에 따른 국악의 보존·전승·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여 전통문화의 고급화·관광 상품화를 통한 세계화를 도모하기 위해 바로 이곳 남원 운봉에 ‘국악의 성지’가 설립된 것이다. 국악의 성지는 국악선인의 묘역, 전시체험관, 독공실, 국악인 참배시설 등이 있어 우리 국악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보고 체험해 볼 수 있다. 각 체험프로그램의 운영일자가 각각 다르므로 시립국악단이나 국악의 성지 사무실에 연락을 하여 예약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실상사

국보 1점과 보물 11점이 있는 국내 최대 문화재 보유 사찰 828년 신라 흥덕왕 때 개창한 최초의 선종가람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길 지리산 천황봉(天皇峯)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소속의 사찰로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서당지장(西堂知藏) 선사로부터 6조 혜능의 남종선을 배우고 돌아온 홍척국사가 흥덕왕과 선강태자의 귀의를 받아 현재의 지리산인 남악(南岳)에 실상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창건 당시 실상사는 지실사(知實寺)로 불리었으며, 이후 홍척국사의 법을 이어 받은 수철화상이 실상산문 제2대 조사가 되었다. 수철화상은 왕실 사람들의 귀의를 받아 실상사를 크게 확장하였다. 고려시대에 최대의 융성기 조계종 실상산파로 종명을 개칭한 고려시대는 실상사의 최대 융성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127년-1130년 사이에 대대적으로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 실시한 발굴 조사에서도 창건 이후 약 300년이 지나 대대적으로 중창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숭유억불 정책을 펼친 조선은 세종 재위 시에 불교계의 종파를 선교 양종으로 묶고 전국에 36개 사찰만을 남겨 놓았다. 당시 실상사는 본래 실상사의 말사였던 산내면 원천리 소재 원수사(源水寺)의 관할에 속하게 되었다. 고려 말 이후 잦은 병화로 쇠퇴해지기 시작한 실상사는 15세기 중반에 이르러 완전히 폐사되었다. 이후 200년간 절의 경역은 민간 경작지로 사용되어 왔다. 철불과 석탑만이 논바닥에 방치되어 오다가 1690년(숙종 16) 침허조사에 의해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36동의 건물을 중창하게 되었다. 그러나 침허조사가 중창한 대가람은 1883년과 1884년의 화재 사고로 약사전, 명부전, 극락전 등 3채의 불전과 승당 1채만 남겨두고 모두 전소되었다. 1884년 월송대사가 대적광전이 불탄 자리에 지금의 보광전 건물을 새로 중창하였다.
여행해결사 '1330 관광통역안내'

내·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국내여행 정보를 안내하는 전화상담 및 실시간 문자채팅 서비스

* 한국관광공사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