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순창,임실,진안,전주] 태조의 꿈길따라 체험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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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권 2박3일 체험 가족 친구 체험 휴식
여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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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소개
  • 황산대첩비지
  • 만일사
  •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
  • 성수산자연휴양림
  • 임실치즈테마파크
  • 진안홍삼스파
  • 마이산도립공원
  • 전주한옥마을
  • 전주 경기전
  • 오목대·이목대

[1일] 출발 → 남원도착 → 중식 → 황산대첩비지탐방 → 군량미체험 → 순창으로 이동 → 만일사 탐방 → 고추장 만들기 체험 → 순창숙소도착
[2일] 기상 → 조식 → 임실로 이동 → 성수산휴양림~ 상이암 → 임실치즈테마파크로 이동 → 치즈테마파크 체험 및 중식 → 진안으로 이동 → 홍삼스파체험 → 진안홍삼스파 숙소 도착
[3일] 기상 → 조식 → 마이산 탐방 → 전주로 이동 → 중식 → 한옥마을 탐방 (경기전, 이목대, 오목대, 자만마을) → 귀가

황산대첩비지

이성계의 왜구토벌 승전비 이성계가 황산(荒山)에서 왜적을 무찌른 업적을 기념하여 세운 승전비(勝戰碑)인 이성계의 왜구토벌 승전비가 있던 자리로,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비전길에 위치해 있다. 고려 후기에는 왜구가 국경과 변방을 침범하여 노략질을 하는 일이 잦았다. 왜구가 지리산 방면을 집중적으로 공격해 들어오자 조정에서는 삼도통사 이성계를 보내어 왜구를 토벌케 하였다. 이성계는 의제(義弟) 이두란과 더불어 1380년(우왕 6) 운봉읍 화수리의 황산 일대에서도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들을 완전히 소탕하여 섬멸하였다. 이 싸움을 황산대첩이라고 한다. 1577년(선조 10)에 황산대첩을 기념하여 현재의 운봉읍 화수리에 황산대첩비를 세웠다. 비문 기록을 보면 아군보다 열 배가 넘는 왜적을 대파함으로써 만세에 평안함을 이루었으니 이 업적을 기려 비석을 세운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황산대첩비는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이 땅의 민족혼을 말살시키기 위해 1945년 조선총독부에서는 도 경찰부장에게 비밀문서를 보내 조 일간(朝日間)의 전쟁이나 자신들의 침략과 관련이 있는 고적(古蹟)과 유물(遺物)을 없애라고 명령한다. 이리하여 400년 동안 보존되어 오던 황산대첩비가 폭파되었다. 1957년 파손된 귀부(龜趺)를 짜 맞추어 비교적 온전한 모양의 이수는 옛 모습을 되찾았으나 이미 파손된 비석은 검은 대리석으로 원형과 똑같은 비를 다시 만들어 대첩비각 안에 보존하였다. 폭파된 비석들은 한데 모아 비각을 세워놓았는데 그것이 파비각(破碑閣)이다. 일제는 비전(碑殿)을 폭파하고 어휘(御諱) 새긴 내용을 철정(鐵釘)으로 쪼아버려 그 글씨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1973년 다시 어휘각을 건립하여 글씨가 새겨진 훼손된 돌을 보존하고 있다. 일제에 의해 황산대첩비가 폭파되어 훼손을 흔적을 통해서 일제의 문화 말살의 정책적 만행을 볼 수 있는 역사적인 교훈으로서 가치가 높다.

성수산자연휴양림

편백나무숲과 절경이 어우러진 편안한 휴식처 성수산자연휴양림은 1996년에 개장하였다. 구역면적은 425만㎡, 1일 최대 수용인원은 2,000명에 달한다. 해발 876m의 성수산 남쪽 계곡 보존이 잘된 원시림에 조성된 민간 휴양림으로 성수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좋은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나무 할아버지라 불리는 김한태가 30년간 가꾼 향나무 10만 그루, 낙엽송 30만 그루, 천연 활엽수 330만 그루 외에 활엽수들이 빽빽이 서 있다. 맑은 계곡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삼림욕을 할 수 있다. 휴양림에는 성수임업연수원을 비롯하여 넓은 임야에 버섯재배장, 양어장 등 야외교실을 조성하였으며, 낚시터, 체력단련시설, 물놀이터, 활터, 산책로, 배드민턴장, 야외무대, 전망대가 있다. 주변에 옛날 신선과 선녀가 짝을 지어 놀았다는 사선대, 섬진강댐, 오수의견비(전북민속자료 1) 등의 관광지가 있다. 성수산부터 편백나무숲까지, 성수산자연휴양림의 자랑거리 성수산자연휴양림에는 4가지의 자랑거리가 있다. 첫 번째는 뭐니뭐니해도 바로 성수산이다. 특히 성수산은 고려와 조선의 건국설화가 있는 산이며, 이석용 의병장의 의병 활동 근거지였다. 6·25전쟁 때 수난을 겪은 곳이다. 두 번째 자랑거리는 편백나무 삼림욕장이다. 전국에 자연휴양림은 많지만 모두 똑같은 삼림욕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산림욕의 효과는 바로 숲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성수산자연휴양림에는 조림 후 40여 년이 넘어 30m 이상의 높이로 자란 10만 그루의 편백나무가 이루고 있는 5개의 삼림욕장이 있자. 우거진 편백나무 숲에서의 삼림욕은 여타 자연휴양림보다 좋은 경험을 제공한다. 세 번째 자랑거리는 천연 표고버섯 재배장과 표고버섯 전문 식당이 있다는 것. 휴양림에는 10,000본이 넘는 참나무에 대형 재배시설을 갖추고 있어 연중 표고버섯의 생태를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이곳에서 재배되는 표고버섯만을 사용하는 전문식당이 있어 향긋하고, 맛있는 표고버섯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마지막 자랑거리는 편안하고 다양한 등산로가 있다는 것.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코스부터 3시간이 넘는 코스까지 다양한 난이도와 볼거리와 특색있는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

진안홍삼스파

인삼을 활용한 고급 휴식 공간 진안의 홍삼을 활용한 고급 휴양 시설인 진안홍삼스파는 홍삼한방과 음양오행 프로그램을 가미한 국내 유일의 스파테라피존이다. 건조, 아쿠아, 건식, 습식, 버블의 오행프로그램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진안 홍삼 스파는 국내 최초로 도입되는 홍삼한방과 음양오행을 프로그램으로 하는 국내의 유일한 양생목적형 스파이다. 국내의 기존의 스파와는 달리 각종 건강 관련시설과 프로그램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운영하여 몸과 마음에 진정한 건강과 휴식을 취하게 한다. 국내 최대 규모의 건강목적형 스파시설과 서비스 진안홍삼스파는 데스티네이션 스파와 퍼블릭 스파가 함께 구성되어 있다. 하늘정원에서 마이산을 바라보며 즐기는 야외 스파 목까지 홍삼거품을 채워 목욕을 한 뒤 안개와 이슬비로 샤워를 할 수 있다. 또 나무 침대에서 마른 약초와 건초를 덮고 쉴 수도 있다. 2층과 3층에서 웰빙스파를 즐기고 옥상에 위치한 하늘정원에서 마이산을 바라보며 즐기는 야외 스파는 일본의 노천탕을 떠올리게 한다. 진안홍삼스파의 특별함은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한 여행지 100선 FunFun한 여행" 다큐에도 선정되어 방송미디어 및 여행작가들로 부터도 꼭 가보아야 할 여행지로도 소개되고 있다. 인근 홍삼빌은 마이산이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26개 객실을 갖추고 있다.

마이산도립공원

옛날 부부신이 하늘에서 내려와 자식을 낳고 살다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해 산이 되어버린 애절한 쌍둥이 산 숫마이산과 암마이산-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진안읍과 마령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노령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걸쳐 약 10~20㎞의 서남방향으로 고원을 이루는 진안고원 상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이산은 두 개의 큰 산봉우리로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봉우리 두 개가 높이 솟아 있기 때문에 용출봉이라 하였고 동쪽을 아버지, 서쪽을 어머니라 하였으며, 신라 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이라 불렀으나 조선 시대 태종이 남행(南幸)하여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속칭으로 동쪽을 수마이산(687.4m), 서쪽을 암마이산(681.1m)이라고도 한다. 마이산의 명물 탑 군들- 이 산 일대의 자연경관과 사찰들을 중심으로 1979년에 전북특별자치도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깎아지른 듯한 수마이봉 기슭의 숲속에 은수사(銀水寺)라는 절이 있고 그 밑에 또 다른 명물인 탑사(塔寺)가 있다. 또한 2003년 10월에 산태극, 수태극의 중심지로서 국가지정 명승 제12호로 지정되었다.이곳은 약 120여 년 전 이 갑룡(李甲龍) 이 30년동안 쌓아 올린 100여개의 탑들이 막돌 허튼 쌓기로 음과 양의 이치와 기공법, 팔진도법으로 쌓은 돌탑인 마이산으로 이루어진 불규칙한 자연석을 모아 원추형 혹은 기둥 모양으로 쌓은 것이다.

전주한옥마을

전주한옥마을이란 예향 전주의 풍류를 한 눈에 느낄 수 있는 풍남동,교동일대의 한옥가옥촌이다. 전통한옥 700여채를 비롯 전주전통문화센터,전주한옥생활체험관,전주전통술박물관,전주전통공예품전시관 및 명품관,경기전,풍남문,오목대 등이 이웃에 있으며, 선조들의 숨결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한옥마을의 유래] 을사늑약(1905년)이후 대거 전주에 들어오게 된 일본인들이 처음 거주하게 된 곳은 서문 밖, 지금의 다가동 근처의 전주천변이었다. 서문 밖은 주로 천민이나 상인들의 거주지역으로 당시 성안과 성밖은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성곽은 계급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존재했던 것이다. 양곡수송을 위해 전군가도(全郡街道)가 개설(1907년)되면서 성곽의 서반부가 강제 철거 되었고, 1911년말 성곽 동반부가 남문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됨으로써 전주부성의 자취는 사라졌다. 이는 일본인들에게 성안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실제로 서문 근처에서 행상을 하던 일본인들이 다가동과 중앙동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1934년까지 3차에 걸친 시구개정(市區改正)에 의하여 전주의 거리가 격자화되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서문일대에서만 번성하던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1930년을 전후로 일본인들의 세력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였다. 1930년대에 형성된 교동, 풍남동의 한옥군은 일본식과 대조되고 화산동의 양풍(洋風) 선교사촌과 학교, 교회당 등과 어울려 기묘한 도시색을 연출하게 되었다. 오목대에서 바라보면 팔작지붕의 휘영청 늘어진 곡선의 용마루가 즐비한 명물이 바로 교동, 풍남동의 한옥마을인 것이다. [주요행사] 매주 차없는 거리운영 공예품 전시판매, 문화행사 개최 한국전통문화아카데미 운영 및 체험학교 운영 외국인대학생 학점이수제, 원어민교사 한국문화체험, 주한미군한국 전통체험, 다문화가정 한국문화이해, 재외동포한국문화체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