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군 구림면 일대에 자리한 회문산(回文山, 893m)은 지리산의 북맥이 흘러와 멈춘 끝자락에 솟아 있는 순창의 진산이자 영산이다. ‘산세가 문장을 이루듯 아름답다’ 하여 ‘회문(回文)’이라 불리며, 순창뿐 아니라 임실, 정읍, 담양 등 여러 고을에 둘레를 맞대고 있다. 옛날부터 호남 5대 명산으로 손꼽혔으며, 풍수상으로도 천하의 복지를 품은 산으로 알려졌다. 산의 능선은 부드럽고도 깊어 사계절 내내 안개와 구름이 머물며, 정상에 오르면 섬진강 줄기와 내장산, 모악산 능선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울창한 소나무와 편백나무 숲, 약수터와 기암괴석이 이어지는 능선길은 봄의 철쭉, 여름의 안개,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으로 사계절이 모두 빼어나다. 정상부에는 회문산성(回文山城)이 남아 있어 이 산이 단순한 자연경관을 넘어, 오랜 세월 인간의 삶과 신앙을 품은 터전이었음을 말해준다. 회문산은 순창의 역사와 자연, 그리고 영성이 한데 어우러진 산이며 그 품 안에 서면 천년의 시간과 생명이 고요히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회문산은 동학농민운동과 구한말 의병들의 근거지로, 항일운동의 불씨가 피어올랐던 곳이다. 한국전쟁 때에는 지리산과 함께 빨치산의 활동 무대가 되어, 현대사의 상흔 또한 품고 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체력단련장이 들어서 옛 모습을 찾기 어렵지만, 깊은 골짜기와 험준한 지형이 당시의 흔적을 고요히 간직하고 있다. 또한 고추장 전설의 유래지이자, 증산교·갱정유도 등 신흥종교의 발상지로도 알려져 있으며,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동생과 조카의 묘소가 안치된 천주교 성지이기도 하다. 자연과 신앙, 그리고 역사가 함께 숨 쉬는 이 산은 그 자체로 순창의 정체성을 품은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