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향교는 지금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 고려 공민왕 3년(1354년)에 창건되어 조선 선조 36년(1603년) 순찰사 장만(張晩)이 좌사우묘지제(左社右廟之制)에 어긋난다고 조정에 품신하여 왕의 재가를 받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전주향교는 전라도 53관의 수도향교(首都鄕校)로 불리울 정도로 그 규모와 세를 자랑했는데, 조선 후기의 경내 건물로는 3칸의 대성전, 각 10칸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신문(神門), 외문(外門), 만화루(萬化樓), 5칸의 명륜당, 각 6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3칸의 계성사(啓聖祠), 신문(神門), 입덕문(入德門), 4칸의 사마재(司馬齋), 6칸의 양사재(養士齋), 2칸의 책판고(冊板庫), 직원실, 제기고(祭器庫), 수복실 등 총 99칸인 대규모의 건물로 되어 있었다.
후에 만화루(萬化樓)는 고종 23년(1886년)에 홍수로 수몰되었고, 책판고는 전라도 관찰사 조한국(趙翰國)이 관고(官庫) 소유 책판을 전주향교로 이장하여 책판고 내에 관리하도록 하였는데, 1920년의 홍수와 1950년 한국전쟁으로 거의 소실되었다.
대성전 중앙에는 공자, 안자, 자사, 증자, 맹자 등 다섯 성인의 위패와 함께 10철(十哲), 송조 6현(宋朝六賢)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또한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 역시 봉안되어 있다.
대부분의 향교가 언덕에 자리하여 대성전이 뒤에 위치한 반면 전주향교는 평지에 위치하고 있어 전묘후학으로 대성전이 앞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향교는 1987년 대대적인 보수를 거친 것으로 1992년 사적 제379호로 지정되었다.
대성전과 명륜당 앞뜰에는 약 400여년 정도 된 은행나무가 각각 2그루씩 있다.
벌레를 타지 않는 은행나무처럼 유생들로 건전하게 자라 바른 사람이 되라는 의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향교 내 대성전 우측 은행나무는 "수컷이 암컷으로 변하여 은행이 열게 되었다"하여 자웅나무라고 부르는데, 이 은행을 따서 지금도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또한 일월문 앞 250년 된 은행나무는 은행을 따서 공을 빌면 과거에 급제한다는 전설이 내려져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