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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복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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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정보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만복사길 7
문의전화
일반전화 : 063-620-6114
여행후기
☆☆☆☆☆ (0)건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 배경지

만복사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는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실려있는 단편 소설이다. 김시습은 계유정난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사건) 때,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며 이후 승려의 길을 걷게 된 생육신 중 1명이다. 계유정난 이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유랑 생활을 하다가 경주 금오산에서 『금오신화』를 저술했다고 한다.
한때 만복사는 남원에서 가장 큰 절로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만복사는 승려들이 저녁 시주를 마치고 돌아오는 승려들의 행렬은 남원 8경으로 손꼽힐 만큼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당시 만복사의 규모가 얼마나 거대했는지를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러던 1597년 정유재란, 남원성이 왜군으로부터 함락당하면서 찬란했던 만복사는 사라지게 된다. 1678년 남원 부사 정동설이 만복사를 재건하려 했지만, 워낙 규모가 컸던 절이었기에 승려가 거주할 수 있는 방 2칸만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후 만복사지의 기록은 사라졌다. 1872년 <남원 부지도>에 만복사라 표시되어 있지 않아, 이전에 완전히 폐사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비록 만복사지는 폐사지로 전락해버렸지만, 만복사의 위엄을 느낄 수 있는 보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먼저 만복사지 입구에는 석인상이 있다. 원래 석인상 2개가 있었지만, 도로가 생기면서 하나는 현재의 위치로 다른 하나는 남원향토박물관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복사지는 소원을 간직했던 지역주민, 저녁 시주를 마치고 돌아오는 승려, 무거운 돌을 짊어졌던 노동자, 국가의 명복을 빌었던 관료의 숨결에 의해 움직이는 자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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