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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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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정보
순창군 쌍치면 둔전2길 83
문의전화
일반전화 : 063-652-0076
홈페이지
http://www.sunchang.go.kr/tour/index.sunchang?menuCd=DOM_000000401001010000
여행후기
☆☆☆☆☆ (0)건
하서 김인후 선생이 명종 3년(1548년)에 순창 점암촌 백방산 자락에 지은 강학당이다.
최초 하서 선생이 훈몽재를 지은 곳은 대학암 위쪽이었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훈몽재는 선생의 5대손인 자연당 김시서에 의해 1680년경 원래의 터 인근에 자연당이라는 이름으로 복원되었다가 퇴락하였다. 이후 후손과 유림들에 의해 점암촌에 복원되었고, 더불어 하서 선생과 김시서, 송강 정철, 율곡이이를 모시는 어암서원이 부근에 건립되었으나, 고종 5년(1867년)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결국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쇠락해 가던 훈몽재는 1951년 한국전쟁때 소실되었으나, 하서 선생의 학문적 업적과 정신을 되살리고 후세에 전승 & 발전시키며, 나아가 역사적 가치 재조명과 예절, 유학 등 전통문화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순창군에서 현재의 위치에 2009. 11. 9 중건하였다. 현재는 유학 전물 교육반, 방학 예절 교육반, 단기 체험 교육반, 여성교육반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시설 안내 ]
○ 훈몽재는 하서 김인후(1510-1560)선생이 명종 3년에 순창 점암촌(현재 위치) 백방산자락에 지은 강학당이다. 하서 선생은 주자의 이기이원론을 계승하는 견해로, 성경의 실천을 학문의 목표로 삼아 이를 조선왕조의 통치이념으로 확립하는데 기여하였다. 송강 정철, 월계 조희문 등 당대 유명한 학자들을 배출하였으며 순창이 호남 유학의 산실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 자연당은 하서 김인후 선생이 당초 건립했던 훈몽재를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소실 후 하서 선생 5대 손인 김시서(1652-1707)선생이 자연당이라는 이름으로 복원하였다. 하서 선생이 낙향하면서 자신의 자연귀의 사상을 자연가라는 시를 통해 표현하였는데 김시서 선생이 자연당을 지어 이를 구현했다고 할 수 있다.
○ 양정관은 매산 홍직필(1776-1852)의 '훈몽재기'에 수록된 하서 선생의 교육이념인 '몽이양정(어리석은 사람을 바르게 기름)' 에서 따와 양정관 이라 하였다. 훈몽재복원사업을 통해 신축한 교육관으로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한학, 한문, 예절교육등)과 학술회의 등이 개최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 삼연정은 하서 선생의 문학적 사상인 '삼연(三然)' 산(山), 수(水), 인(人)' 을 구현한 정자다. 하서 선생이 지은 1,600여 수의 시에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인 삼연에서 그 명칭을 따왔다. 하서 선생의 사위이자 제자인 고암 양자징의 48 영시 중 14번째 원규투류(담장 밖에서 뚫고 가는 물이 흐름을 엿보다)는 삼연이 잘 드러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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