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왜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읍성인 남원읍성은 1982년 11월 3일 사적 제298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성벽 일부만 남아있고 현재 유물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성의 축조 시기는 통일신라시대로 추정하고 있는데, 삼국사기에 신문왕 11년 남원성을 쌓았다는 기록 때문이다.
남원읍성은 1596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듬해인 1597년 5월 왜군과의 전투에 대비해 대대적으로 보완 개축했다고 하며, 개축하자마자 1597년 8월 전라도의 명운을 건 호남 최대의 전투가 벌지게 된다.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점령하지 못한 것이 패전이라고 판단해 정유재란 때는 전라도를 우선 점령하라는 지시로 14만에 이르는 왜군은 우군과 좌군으로 나눠 전라도로 진격했으며 무려 5만 6천 명에 달한 왜군이 구례를 거쳐 남원으로 진격한 것이다.
군사뿐만 아니라 행정 기능도 담당하는 성으로 일반적인 성의 양식과 달리 성곽이 장방형을 띠고 있다. 성곽의 둘레는 3.4km에 달하고, 성벽의 평균 높이가 4m이다. 사방에 성문이 있었고 그 중 남문이 가장 컸다. 성내에는 70여 개의 우물이 있었다. 남원시 향교동에 만인의총이 있는데, 정유재란 당시 왜군에 의해 전사한 군인과 민간인의 무덤이다.
주차시설 | 없음 |
---|---|
쉬는날 | 연중무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