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군수 조병갑의 가렴주구(苛斂誅求)와 만석보 물세 징수로 농민의 원성이 한창 높아가던 1893년 11월 초순에 전봉준 등 20명의 농민 지도자들은 죽산마을 송두호의 집에 모여 봉기를 모의한다. 봉기 당위성을 밝히는 격문과 사발통문을 작성하고 주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둥그렇게 서명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함께 책임을 지기로 한다. 격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고부성을 격파(擊破) 하고 군수 조병갑을 효수(梟首) 할 것,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할 것, 군수에게 아첨(阿諂) 하여 인민(人民)을 침어(侵漁) 한 탐리(貪吏)를 격진(擊懲) 할 것, 전주영(全州營)을 함락(陷落) 하고 경사(京師)로 직향(直向) 할 것 4개의 행동목표를 작성한다. 마지막 문구는 동학농민혁명이 단순한 민란이 아닌 시대를 개혁하고자 하는 혁명으로 볼 수 있는 근거라고 한다.
검색결과 119건 (6/119)
아이들과 동학농민혁명관련 여행을 다녔어요
사발통문이라는건 이제 잊지 않을거 같아요
이 문자채팅 관광안내는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