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는 논개가 태어난 고장답게 논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로, 장수삼절(長水三節)로 알려진 논개는 조선 중기, 진주병사 최경회의 사랑을 받았다 한다.
임진왜란 때 끝까지 저항하던 진주성이 함락되자 왜장들은 촉석루에서 주연을 베풀었다.
기생으로서 그 자리에 참석한 논개는 성의 함락과 군관민의 죽음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하고 왜장 게야무라 후미스케를 바위 위로 유혹해 껴안은 채 남강 아래로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그가 뛰어내린 바위를 훗날 의암이라 하였다. 지금 사당을 의암사라 부르는 연유이다.
조선 헌종 12년(1846)에 현감으로 장수에 온 정주석은 이 곳이 논개가 자란 고장임을 기념하여 논개생향비를 세웠는데, 사당 건립 당시 발굴되어 경내에 옮겨져 있다.
논개 사당은 1981년 4월 1일 전북특별자치도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되었다.
장수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장수읍 남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논개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의암사(義岩祀)라고도 한다.
의암사가 창건된 후에 장수군은 매년 9월 9일을 택하여 논개제전을 열다가 1968년부터는 장수군민의 날로 지정하고, 군민의 날 행사와 겸하여 대제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