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면 용산리 연기제 하단부에 위치한 효자바위는 가로 8m×높이 3m, 중량 50톤이다. 조선 인조 무자년(1648) 김하익이 16세의 나이 때 모친의 병을 낫기 위하여 겨울에 선어를 구하고자 20리 떨어진 장연강에서 얼음을 깨고 고기를 구해 귀가 중 효자바위 근방을 지날 때 백호가 나타나 길을 막자 인근을 지나던 스님이 바위에 白虛堂(백허당) 세자를 손수 쓴 후 사실이면 무사할 것이고, 거짓이면 살아남지 못하리라 하여, 雪水(눈물)로 글씨를 썼는데 사실로 나타나 스님이 탄복하고 범을 타고 갔다 하며 설수로 쓴 글씨가 지워지지 않았다고 한다. 김하익의 효에 감동하여 스님이 구해주고 범이 감동하여 태워다 주는 등 효자로서 칭송이 자자하였으며 공직에 나아가 안성군수를 지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