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면에 위치하고 있는 성수산은 고려와 조선의 건국설화가 얽혀 있는 명산이다. 무주의 덕유산에서부터 회문산으로 뻗어내린 노령산맥에 자리잡고 있다. 산의 높이 876m로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지만 계곡이 깊고 숲이 울창하며 정상에 오르면 시야가 탁 트여 사방으로 전망이 빼어나다. 성수산이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면서 야영시설과 취사시설, 산림욕장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관광객들에게 역사체험과 더불어 편안한 휴식 공간으로 제공되고 있다. 어렵지 않은 산행과 자연휴양림 조성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성수면 성수산 상이암에는 고려와 조선의 개국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신라말기 도참설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도선스님이 성수산의 산세가 비범하여 천자를 맞이할 성지인 것을 알고 왕건에게 이 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면 대망을 성취할 것이라 권하였다. 백일기도를 마쳤는데도 별다른 일이 없자 왕건은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에 목욕재계하고 다시 3일간 간절히 소망을 빈 끝에 마침내 관음보살의 계시를 받았다. 크게 기뻐한 그는 그곳을 환희담(歡喜潭)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후 왕건은 태봉의 궁예를 몰아내고 황제가 되어 신라를 복속시킨 뒤 국호를 고려라고 고치고 태조가 되었다. 도선스님은 이를 기념하여 그 자리에 도선암이라는 암자를 세웠다고 한다. 고려 왕건의 건국설화에 이어 조선건국의 태조 이성계도 이 성수산에 얽힌 건국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고려가 쇠퇴하던 말기, 이성계가 왜구를 섬멸하는 대공을 세우고 남원을 지나 전주로 가던 중 도참설의 대가이던 무학대사는 야심에 찬 그를 도선암에 안내한다. 이성계는 이곳에서 간절히 기도한 끝에 용이 나타나 자신의 몸을 세 번 씻어주는 길몽을 꿨다. 그는 크게 기뻐하여 붓을 들어 그곳 바위에 삼청동(三淸洞)이라고 썼다. 그 후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이곳에서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 하여 도선암을 상이암(上耳庵)이라고 이름을 고치고 자신이 삼청동이라고 쓴 바위를 어필각(御筆閣)을 지어 보존하게 했다고 한다. 이후 상이암은 의병대장 이석용(李錫庸)에 의해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되었고 왜병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1958년 상이암재건위원들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 경내에 전북특별자치도문화재자료 제124호로 지정된 부도(浮屠)가 있다. 성수면에는 이석용 외 28의사를 모셔놓은 소충사(昭忠祠)가 있다.
이용시간 | 주차시설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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