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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성황대신사적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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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대신사적현판(장류박물관_보관).JPG
순창성황대.jpg
성황대신사적현판(장류박물관_보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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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정보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43
문의전화
일반전화 : 063-650-1623
여행후기
☆☆☆☆☆ (0)건

고려말의 첩문 자료를 기초로 조선 명종18년(1563)에 처음 제작했으나 이것이 낡아 인조11년(1633) 개각했으나 유물이 남아있지 않고 영조19년(1743)에 성황사를 크게 중수하면서 2차로 개각한 것이 이 현판이다. 개각된 이후 영조30년(1754)과 순조23년(1823)에 이 현판 하단에 다른 필체로 추기(追記) 되었다.
가로 180cm, 세로 54cm의 목판에 총 73행, 1600여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 내용은 고려 충렬왕 7년(1281년)에 국가에서 순창 성황신에게 '금자광록대부 삼한공신 문하시 장군(金紫光祿大夫 三韓公臣 門下侍(字破)將軍)'이라는 작호(爵號)를 부여한 이후 조선 순조 23년(1823년) 성황당을 개건한 때까지의 내용을 추가로 기록하여 순창 성황제의 변화 모습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이 현판의 내용으로 「고려사」에 기록된 성황신앙의 내용을 직접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련 기록이 부족한 조선시대의 성황신앙의 변화 모습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지정 현판에 의하면 고려시대에는 국가에서 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작호를 내리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이런 전통을 이어받아 지방의 수령이 제사를 지냈으며, 민간에도 이런 신앙이 뿌리를 내려 지금까지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성황신앙은 일제의 한국민속문화 말살정책과 70년대의 새마을운동으로 크게 쇠퇴하였지만, 지금도 전국 각지에는 성황당이 있어 정초에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 남아 있다.
이 현판은 1992년에 옥천향토문화연구소가 순창 설씨(淳昌 薛氏)의 집성촌이던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금과면 동전리 마을의 민속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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