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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평사 금동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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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순평사금동여래좌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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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정보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금산로 66
문의전화
일반전화 : 063-653-3010
여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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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평사(淳平寺)의 금동여래좌상(金銅如來座像)은 현재 순창읍 순화리 426번지에 소재한 순평사의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다.
이 불상의 전체 높이는 104㎝, 상호높이는 30㎝이며, 어깨너비 42㎝인데, 불상이 지닌 여러 특징으로 보아 14∼15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우아하고 귀족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불상이 처음 어디에서 조성되었는지, 또 어디에 모셔졌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구전에 의하면 전에는 남원(南原)에 있는 어느 사찰에 모셨던 것이라는데, 해방(1945년)후에도 전남 담양(潭陽)의 어느 개인에게 옮겨졌다고 한다.
그런데 순평사에서 이 불상을 모시게 된 것은 전남(全南) 담양군(潭陽郡) 담양읍(潭陽邑) 양각리(羊角里)에 소재한 백양사(白羊寺) 의 포교당(布敎堂)에서 거의 완파 직전의 불상을 수습하여, 중수개금불사(重修改金佛事)를 하고 순평사에 대웅전(大雄殿)을 지으면서 이곳으로 모시게 된 것이라고 한다.
순평사(淳平寺) 역시 그 자세한 역사(歷史)를 찾아볼 수는 없으나, 약 100여년쯤 전에 조그마한 사찰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따로 법당(法堂)도 없이 인법당(因法堂-불전에 따로 없는 작은 절에서 중이 거처하면서 불상을 모신곳)만으로 유지되어 오던 것을 지난 1995년에 몇몇 여승들이 대웅전을 새로이 짓고 또 불상도 모시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 불상은 대좌(臺座)나 광배(光背)가 없으며, 단지 불신(佛身)만 있으나 거의 원형으로 잘 남아있다. 자세는 결가부좌(結跏趺坐)의 모습을 한 좌상으로 오른발을 왼다리 위로 올리는 길상좌(吉祥坐)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법의의 착의법(着衣法)은 여말, 선초(麗末, 鮮初-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의 불상에서 흔히 보이는 통식으로 나타난 것과 같고, 승각기(윗 속옷) 의 상단은 일자형(一字形)으로 고려 후기에 약간 호형(활처럼 굽은 모양)을 이룬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 고려후기 대부분의 불상 치레장식(金具裝飾) 안에는 화문(花紋)이나 당초문(唐草紋)등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 불상의 치레장식 안에는 이러한 문양들이 생략되어 있으며 수인(手印, 제불보살-諸佛菩薩과 제천선신-諸天善神-이 그 깨달은 내용을 양 손가락으로 나타내고 있는 모양)은 양손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댄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 불상의 원래의 손은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일반적으로 손은 따로 만들어 팔목에 끼우고 있는데 이 불상의 손은 석고이다.)
고려후기에는 두가지 형식의 불상들이 조성되었는데, 하나는 통일신라의 불상양식을 이어받은 우아하고 귀족적인 모습의 불상들이고, 또 하나는 라마계 양식의 불상들이다. 순평사 금동불좌상(金銅佛座像)은 전자의 계열에 속하는 불상으로 불상이 지니고 있는 여러 특징으로 보아 그 조성시기는 14∼15세기경(麗末, 鮮初)으로 보인다.
이 금동불좌상은 지난 1998년 11월 27일자로 유형문화재 제165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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