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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 설진영선생이 후학을 양성하고 민족사상을 배향하였던 곳으로 1910년에 세웠다.<br /><br />
선생은 고정 32년(1895)기우만과 함께 장성에서 의병활동을 하였으며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오랑캐는 상대 할 수 없다고하여 아미산 남쪽에 남파 서실을 세우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심혈을 기울여 많은 영재와 항일 애국지사를 배출하였다. 1940년 일제 민족말살정책의 하나인 창씨개명에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다가 성(姓)을 절대로 고치지 않겠다는 절명서와 유서를 남긴 채 서실 앞 우물에 투신 자결 하였다.</p><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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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실은 앞면 4칸, 옆면 3칸으로 앞, 뒷면 모두 툇마루가 있는 집이다. 왼쪽부터 방과 방, 그리고 대청으로 이어지며 방과 대청 사이는 분합문이 있어 오른쪽 3칸은 필요시 모두 터서 한 공간으로 사용 할 수 있게 하였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동시에 모아 놓고 강의를 할 수 있는 서실에 적합한 구조로 꾸민 것으로 대청 전면에는 4짝 들어열개문을 달아 여름에는 터서 사용하였다.<br /><br />
처음에는 초가였으나 현재는 시멘트 기와로 초가였던 지붕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서실 뒤로는 대숲이 있고 마당 오른쪽 한편에는 뒷간이 있는 헛간채를 배치하여 놓았다.</p><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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