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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봉농악전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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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정보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강진면 강운로 272
문의전화
일반전화 : 063-643-1902
홈페이지
http://www.pilbong.co.kr/
여행후기
☆☆☆☆☆ (0)건

호남농악 좌도 가락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강 진면 필봉(筆鋒) 마을은 40여가구가 모여 사는 아담한 마을로서 호남농악 좌도(左道) 굿 7채 가락을 90여년전부터 꾸준히 대를 이어 보존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들당산굿」을 비롯,「날당산굿」,「당산제굿」,「장원리굿」,「이사굿」, 「매굿」등이 전승되고 있다. 농악의 정신이 협동과 협화(協和:싸잽이) 그리고 형태의 근간이 되는 7채 가락의 보존과 토착화에 따른 전승에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판 굿」은 음력정월에 마을의 가가호호를 돌아다니며 집안의 무사태평을 축원해주는 「뜰볼비굿」을 마친 후에 하루 날을 잡아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흥겹게 노는 굿으로, 마을에서 가장 마당이 넓은 집을 골라 판을 만들고 밤이 새도록 풍물을 잡으며 논다. 이 「판굿」에는 「길굿」외에 13종의 굿놀이가 있다.

 

첫 째, 외마치 7채 가락은 호남 좌도굿의 특징이며 7채 가락이란 악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타음(打音)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둘째, 쌍방울진 굿은 덕석모리나 오방진 굿이라고도 하나 이 마을에서는 쌍방울진이라고하여 두번 진풀이를 한다. 셋째, 반 풍류 굿은 느린 풍류를 빨리 친다. 넷째, 호호굿은 가락에 맞추어 구령을 외치면서 단결을 나타낸다. 다섯째, 영산굿은 좌도가락 중에서 가장 흥겨운 가락으로 판굿의 절정을 이룬다. 이 영산굿에는 「가진영산」, 「다드래기영산」, 「군영놀이영산」, 「제농기영산」, 「미치기영산」등이 있다.
 

풍물굿의 변천사  
 
1. 필봉마을의 유래
필봉농악의 중심 전승지는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필봉리 상필봉마을이다.
이마을은 약 300여년 전에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았다 한다.
 
2 필봉농악의 형성기
필봉마을의 신앙은 당산제를 중심으로 하는 마을 공동체 신앙이다.
일제 강점기때 민족신앙 말살 정책에 의해 잠시 주춤하였으나 1970년대 다시 시작되어 공동체 사회에서의 생활 문화와 공동체를 결속 시키는 구실을 하였다. 당산제는 현재까지 연행되어 필봉농악의 큰의미인 당산굿의 하나로 남아있다.  
 
3. 필봉농악 모색기
박학삼을 마을 상쇠로 초빙하여 모셔온 1913년 으로 본다.
마을 주민들은 박학삼을 굿선생으로 모시며 체계적인 풍물교육을 받으면서 전문적인 기량을 닦았던 것이다. 박학삼이라는 쇠잽이가 마을에 이주함으로써 필봉마을의 농악은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4. 필봉농악의 발전기(1970년대~1995년)
1970년대 활성화된 농악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우수한 실력으로 많은 상을 수상하였다.
이를 계기로 필봉농악은 탄탄한 마을 굿패로써의 조직력이  만들어졌다.
이후로 양순용의 체계적인 풍물굿 전수에 인근 마을주민과, 지역의 초.중.고 학생, 대학생 전수까지 필봉농악의 활발한 전승이 이루어진다.
 
5. 필봉농악의 도약기(1996년~현재)
1997년 제9회 임실 필봉농악 정기 발표회와 정월 대보름굿을 개최하며 남원과 임실로 나뉘어져 있던 전수관을 하나로 통합하게 된다. 또한 국비와 군비의 지원을 받아 기존의 전수관 부지 옆에 새롭게 전수관을 확장하게 된다.
밖으로는 해외 초청 공연과 중국과 미국에 필봉굿 풍물연합이 만들어 지기도 한다.
이 후로 미국과 중국의 필봉농악 지부인 ‘불사조’ ‘전미 풍물연연합’ 전수교육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2004년 부터는 전수관내 ‘필봉전통문화체험학교’ 를 운영하며 전국의 초,중,고 학생들에게 필봉농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6. 필봉농악의 주요인물사
필봉농악의 상쇠계보
전판이 → 이화춘 → 박학삼 → 송주호 → 양순용 → 양진성(현재)
전판이= 필봉농악에 영향을 준 상쇠 계보에서 가장 최고의 인물은 전판이이다.
유명한 상쇠를 모셔 굿을 익히는 문화가 필봉뿐아니라 여러 다른 지역에서도 연행되어지고 있었다는 것은 특히 전판이라는 상쇠는 남원과 곡성굿의 상쇠계보도 이 전판이라는 사람임을 볼때 좌도 지역의 유명한 뜬쇠였음이 확인된다 하겠다.
이화춘= 전판이 다음으로 이화춘은 필봉농악의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람이다.
이 화춘의 출생지는 임실군 청웅면으로 알려졌으며 이화춘 하면 농악으로 그를 덮을이가 없었다고 할정도로 그 기량이 뛰어났으며, 이화춘은 한쪽 다리를 절었다고 하는데 ‘영산굿’을 칠때 ‘영산다드래기’ 가락을 ‘솟짝솟짝’ 치면서 상모놀음 하는 모양이 번개나 회오리바람 같았다고 한다.
박학삼= 박학삼은 이화춘으로부터 풍물굿을 배운 후 필봉마을로 이주하여 기존의 마을굿 수준의 필봉풍물굿을 걸립패 수준으로 끌어올린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박학삼은 이화춘에게 굿을 배웠다.
송 주호= 박학삼과 동서지간인 사람으로 박학삼에게 쇠를 배웠으며 박학삼상쇠 사망후 필봉농악의 2대 상쇠를 맡게된다. 송주호 상쇠는 전조시는 잘했으나 굿의 절차를 잘모르고 또한 마을에 거주하지도 않아 필봉굿 상쇠를 몇차례 한 후 에는 곧 바로 양순용에게 상쇠를 넘겨 주었다.
양순용= 양순용은 1941년 임실군에서 태어났고 박학삼 상쇠밑에서 끝쇠를 치기 시작하여 14세에 필봉농악 상쇠를 맡았다. 당시 나이가 어렸던 그를 사람들은 애기상쇠라 불렀다.
박학삼 상쇠에게 굿의 체계와 가락을 배운다. 당시엔 농악을 치는 마을이 많아 임실군 지역에는 농악 연행이 성행하여 5일장마다 굿판이 형성되고 마을간 농악 경합이 있기도 하였다.
1970년대 초는 민속학이나 국악을 전공하는 소수의 지식인들이 마을로 들어와 풍장을 배우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양순용 상쇠가 다른 지역의 풍물굿  명인들과도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양순용 상쇠는 1977년 이후로 대회에 참가하여 많은 수상을 하기도 한다.
1988년 필봉농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1-마호로 지정받으나 양순용상쇠는 기능보유자로 선정되지 못한다. 그의 나이 50세가 되던해 1991년에야 기능보유자로 인정받는다.
필봉농악의 발전기는 이후 농악단의 활발해진 공연과 전국각지에서 몰려드는 전수생들, 일본 미국등 해외에서까지 양순용이 거주한 남원으로 찾아온다.
1995년 8월11일 안과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그는 필봉농악 전승을 위해 쉬지않고 활동 하였다. 당시 그이 나이 59세였다.
양진성(현재상쇠)= 1972년도에 필봉굿에 입문하여 필봉굿의 전승과 전수교육에 힘쓰고있다
1995 년 필봉굿 보유자및 상쇠였던 부친 양순용의 작고하후에는 필봉굿의 상쇠, 보존회장을 현재까지 맡고 있다. 필봉굿 전수자, 초중고 학생, 대학생, 일반인, 지역민들에게 현재 필봉농악을 전수중이며 정월대보름굿, 필봉풍물굿축제를 기획하여 풍물굿의 일반 대중 참여를 확대 하고 있다.
 
굿의종류
당 산굿= 필봉마을에서는 예로부터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진 당산에서 마을의 무병과 풍년을 기원하기위해 매해 당산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당산굿은 음력 초아흐렛날에 마을의 당산에서 마을의 제액초복을 위해 행해지는 마을공동의 제사굿 형태의 풍물굿이다.
 
마 당밟이= 지역에따라 뜰볿이, 답정굿,지신밟기라고도 하는데 필봉농악에서는 뜰볿이라 한다. 정초에 신년을 맞이하여 풍물굿울 치면서 나쁜액은 몰아내고 좋은 복은 불러 들이며 집안식솔들의 무사 평안함을 빌어주기 위하여 마을사람들과 굿패가 가가호호 방문하여 고사굿을 하는 의식이다.
 
두레굿= 필봉마을에는 예부터 협동과 함께 일하기 위하여 두레조직을 구성 하는데 두레를 조직하는것을 두레짠다라고 한다. 두레는 일감에 따라 김매기두레, 길쌈두레 등이 있다.
 
두레굿은 힘든 노동이 놀이와 어우러져 신바람의 노동이 되는 생산적이고, 삶과 결부된 마을굿위 정형이라 할 수 있다.
 
노디고사굿= 노디고사굿은 정월 보름날 마을앞 노디에 금줄을 쳐놓고 마을사람들은 징검다리 보수에 쓰이는 곡괭이나 삽들을 메고 굿패는 질굿 가락을 치면서 노디에 모인다.
 
노디 보수가 끝나면 굿가락을 한바탕 친다음 상쇠가 즉흥적으로 한해동안 노디에서 동네 사람들이 물에 빠지거나 물이 많이 불어 노디가 떠내려 가지 않게 해달라는 축원 덕담을 하고 동네 사람들과 굿패가 어우러져 대동굿을 한다.
 
매 굿= 매년 섣달 그믐날에 치는 굿은 망년 굿으로서 해가 바뀌는 시기를 맞이하여 악귀를 몰아내고 새해이 복을 빌기위한 의식굿이며 정초에 하는 굿은 한 해 동안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의식굿이다. 필봉마을에서도 매해 섣달 그믐날 밤에 마을의 사악한 액을 쫒고 경사스러운 것을 불러들이는 벽사진경을 위하여 치는 의식굿으로 매굿을 해마다 친다.   
 
판 굿= 판굿이란 모든 큰굿의 마지막 마지막 단계에 이루어지는 대동 놀이굿을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청, 관중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따로 이루어지는 전문화된 연예굿을 말하기도 한다. 필봉농악 판굿은 크게 앞굿과 뒷굿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사람들이 놀기 위한 굿이 아니라 신과 인간이 함께 즐기기 위한 굿의 성격을 많이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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