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사이트맵

고창 무장현 관아와 무장읍성

이미지 로딩중
01.jpg
02.jpg
03.jpg
04.jpg
05.jpg
06.jpg
07.jpg
08.jpg
01.jpg
02.jpg
03.jpg
04.jpg
05.jpg
06.jpg
07.jpg
08.jpg
위치정보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읍성길 45
문의전화
일반전화 : 063-560-8047
여행후기
☆☆☆☆☆ (0)건

개요

1991년 2월 26일 사적 제346호로 지정되었다. 옛 무장현(茂長縣)의 객사(客舍)와 동헌(東軒), 읍성을 포함한다. 무장읍성은 1417년(태종 17) 무장진 병마사 김노(金蘆)가 왜구(倭寇)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평지성으로, 길이 약 1.2km이다. 동문은 터만 있고 남문인 진무루(鎭茂樓)가 남아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건물이다. 남문 주위에 석축이 남아 있고, 성 주위에는 너비 4m, 길이 574m 정도의 해자 흔적이 있다. 성 안에는 객사(전남유형문화재 34)와 동헌(전남유형문화재 35)이 남아 있다.

소개

무장면 성내리에 있는 이 성은 1991.2.21 사적 제346호로 지정되었으며, 성의 남문인 진무루에서 무장초등학교 뒷산을 거쳐, 해리면으로 가는 도로의 좌편까지 뻗어 있는데 성의 둘레는 약 1,400m, 넓이는 43,847평이다. 조선 태종 17년(1417)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 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만여 명을 동원, 흙과 돌을 섞어 축조하였다. 성내에는 객사, 동헌, 진무루 등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고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유구들이 산재해 있다. 진무루 후경성문 위엔 진무루라는 한자가 적혀져 있는 현판이 걸려있다. 성은 허물어져 객사와 동헌, 남문인 진무루가 전해질 뿐, 동문과 해자 사직단 등은 흔적만 남아 있다. 이 성은 원래 돌로 축적한 석성이였으나 훗날 허물어진 곳을 흙으로 보강하여 토성이 되었다고 한다. 1915년에 발견된 「무장읍지」에 의하면 조선 태종 17년(1417)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 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0,000여 명을 동원하여 그 해 2월부터 5월까지 만4개월 동안에 축조했다고 전한다.

무장읍성 무장읍성
무장읍성

무장객사

건물은 조선시대 무장현의 객사로 쓰이던 것으로 선조 14년 (1581)에 건립하였다. 객사는 궐패를 모셔두고 현의 수령이 매달 초 하루 보름에 배례하는 정청과 왕명으로 지방에 내려오는 벼슬아치들의 숙소로 쓰이는 좌, 우헌으로 구성된다. 이 객사의 정청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초석 석재 하부는 네모지게 상부는 반구형으로 다듬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운 외에 별다른 특징은 없다. 우헌은 정청보다 지붕을 낮게 꾸미어 건물의 격식을 낮추었다. 이밖에 외대문 중문과 좌 · 우량이 있었으나 남아있지 않다. 석축에 오르내리는 돌계단 등에도 호랑이, 구름 무늬 등을 양각해 놓아서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건물 정면의 정원이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객사의 건물은 면사무소로 사용하면서 일부 형질을 변경했던 것을 1990년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무장객사 무장객사

무장동헌

무장현의 치소로 쓰이던 건물로 1565년(명종20)에 건립되었으며 여러차례 중수를 거쳐 최근에는 무장초등학교의 교사로 쓰이면서 변경되었던 것을 1984년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였다. 정면 6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익공집으로 높이 45cm의 석축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공포의 형태는 조선 후기의 평범한 2익공으로 쇠서의 곡선이 날카롭고 장식이 가미되어 있다. 특히 다른 건물에 비해서 기둥의 높이가 특별히 높은 것이 특징인데 관아로서의 위엄을 살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고무장동헌 무장동헌
무장동헌

이용안내

해당 관광 콘텐츠에 관련된 세부적인 내용을 안내하는 표
이용시간 상시
주차시설 있음
쉬는날 연중무휴
목록으로
여행해결사 '1330 관광통역안내'

내·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국내여행 정보를 안내하는 전화상담 및 실시간 문자채팅 서비스

* 한국관광공사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