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일제는 한국지배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741km에 달하는 신작로를 전국에 만드는데 당시 우마차를 사용하는 우리민족의 생활과는 무관하게 총독부의 치적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려는 전시효과와 경제·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이 도로들은 주로 곡창지대를 항구도시와 연결시켜 한국의 곡물을 일본으로 쉽게 실어나르기 위한 경제침략의 수단으로 이용된다.
넓은 신작로가 만들어지면서 우리민족은 말로는 다할 수 없는 피해와 고초를 겪게 되고 헌병들 책상 위의 지도상에서 연필로 찍찍 그어져 속칭 "연필도로"라고 하는데 이 계획선에 걸리면 논. 밭이건 집이건 그대로 헐려 아무보상 없이 빼앗기고 있어 곳곳에서 원성이 자자했다.
또한 도로건설은 거의 전부 인근 주민들의 강제노역으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에 동원된 사람들은 점심제공도 받지 못하고 하루종일 일하고 밤이면 길바닥에 쓰러져 자야 하는 형편이다.
전주와 군산을 잇는 26번 국도 4차선 포장도로로 직선으로 40km나 뻗어 있다. 근대적 도로로 닦인 것은 1908년 10월로 우리나라 최초로 시멘트 포장도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