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보 자리로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3호로 지정되었다. 신태인에서 고부로 가는 약 4㎞ 지점의 동진강을 건너는 다리 하류에 보 뚝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원래 만석보는 정읍천과 태인천의 상류 지점에 배들평 농민들이 설치하였다. 이 만석보는 예동보, 광산보라고도 불렀는데, 가뭄이 심해도 이 보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 배들평은 흉년 없이 농사를 지었다고 해서 만석보라고 불렀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에 반기 그럼에도 1893년(고종30) 고부군수 조병갑이 세금을 거두기 위해 만석보 바로 아래에 새로운 보를 일부러 쌓았다. 조병갑은 농민들을 강제로 징발하여 부역을 시키고 남의 산에서 수 백년이나 된 나무들을 마구 베어다 썼다. 첫해에는 세를 걷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임금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세라는 명목으로 보세를 징수하였다. 일 두락에 상답은 이두, 하답은 일 두씩을 받아 현재의 이평면과 부안군 백산면에 700여 석을 쌓아놓는 등 폭정을 일삼았다. 동학농민혁명의 대의를 받들어 길이 기념 새 만석보는 너무 높아서 홍수가 나면 냇물이 범람하여 상류의 논들은 피해를 입었다. 보세를 줄여 달라고 한 농민들은 관아에서 매를 맞았다. 이에 분개한 농민들은 1894년 1월에 고부 관아를 점령하고, 만석보로 달려가 헐어버리고 말았다. 이는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1973년 5월 11일 갑오동학혁명기념사업회가 이곳에 2.5m의 만석보유지비(萬石洑遺址碑)를 건립하였다. 이평에서 신평리 쪽으로 2.8㎞ 정도 가면 왼쪽 둑길 위에 있다. 이 유지비를 세운 것은 불의에 항거하던 선열들의 높은 뜻을 되새기며 나아가서는 동학농민혁명의 대의를 받들어 길이 기념하고자 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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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시간 |
00시 ~ 00시 |
주차시설 |
없음 |
쉬는날 |
무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