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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패지관(전주객사)

풍패지관(전주객사)

조선왕조의 발상지

임금님께 예를 표하는 망궐례가 행해지던 곳, 전주 객사는 옛 전라감영의 권위와 명성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풍패지관은 조선에서 온 중국 사신 주지번이 익산의 선비 송영구를 찾아가던 중 이곳에 들렀다가 쓴 글씨로 전해진다. '풍패'는 건국자의 본향이며, 전주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본향으로 '풍패지향'이라고 했으며, 전주 객사는 '풍패지관'이라 했는데 이는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뜻이 담겨 있다.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게 되는 풍패지관(전주객사)은 뜻밖의 여유를 갖게 한다.”

객사는 고려조선 시대에 고을에 설치했던 객관으로 출장을 나온 관원이나 외국 사신의 숙소로도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에 와서 주전(본관)에 전패를 안치하고 국왕에게 배례를 올렸으며, 국가 경조시에는 민관이 합동으로 의식을 거행하거나 외객을 접대할 때는 연회장으로 사용되었다. 원래는 주관과 동서 익헌·맹청·무신사 등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주관과 서익헌과 수직사만 남아 있다. 현재 초석만 남아 있는 동익헌은 서익헌과 규모가 같으나 도로확장으로 인해 1칸이 부족하다. 객사의 정문은 주관을 정면하여 내삼문·중삼문·외삼문이 있었으나 원래의 내삼문 안쪽으로 경역이 축소되어 있다. 수십 년간 전주시민의 만남의 장소였던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의 전주객사(全州客舍)가 고유 이름인 풍패지관(豊沛之館)으로 바뀌었다. 관사 또는 객관으로 불린 객사는 고려 이후 각 고을에 설치되었는데 객사가 전주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데다 일제강점기와 근·현대를 거치면서 명칭이 왜곡돼 고유 이름인 '풍패지관'으로 되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3가 1
영화의 거리

영화의 거리

전북의 젊음, 바로 여기에 있다

객사는 현재 만남과 휴식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들러 잠깐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어두워진 후에는 시내 중심가에 <풍패지관> 이라는 현판이 걸린 객사의 야경을 만날 수 있으며 그 옆에는 전주의 중심 거리이자 젊음의 거리인 걷고 싶은 거리에서 루미나리에의 화려한 불빛을 감상할 수 있다.

전주 국제영화제의 길로도 유명한 영화의 거리는 전주시의 ‘영화의 도시’ 로서의 상징성 강화를 위해 영화의 거리에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국비 10억원 등 총 21억원을 들여 경관조명 및 상진조형물 등을 설치하여 특화 거리로 조성한바 있다.
이처럼 객사는 전통과 현대인들의 조화가 이뤄지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풍남문

풍남문

호남제일성 , 전주 풍남문

조선왕조 500년간 전북 전주는 호남역사의 중심이였으며 조선시대 전라감영의 소재지였던 전주를 둘러싼 성곽의 남쪽 출입문이 풍남문(보물 제 308호) 이다.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성에는 동서남북으로 각각의 출입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풍남문만 남아있어 이곳이 전주성이 있던 자리이며, 풍남문 정면에 걸려있는 호남제일성이란 현판이 한때 전주가 호남 제일의 도시였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풍남문은 1839년(고려 공양왕 1년)에 관찰사 최유경이 축조하였으나, 정유재란 때 화재로 소실되어 1768년 (영조 44년) 전라감사 홍락인이 다시 세우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호남의 심장부이자 최대의 관문이었던 전주성을 거쳐야 비로소 호남땅으로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을만큼 그 옛날 호남에서 전주의 위세는 대단했다. 풍남이란 풍패의 남쪽이란 뜻으로 여기서 풍패란 건국자의 본향을 일컫는 말로 중국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의 고향이 풍패인데서 비롯되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전주 이씨) 이 전주로 조선왕조의 발원지인 전주를 풍패에 비유한 것이다. 전주 도심속 산아한 모습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3길 1 풍남문
한옥마을

한옥마을

전주 풍남동 일대에 700여 채의 한옥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 한옥촌(韓屋村)으로, 전국 유일의 도심 한옥군 임.
1910년 조성되기 시작한 우리나라 근대 주거문화 발달과정의 중요한 공간이며, 경기전, 오목대, 향교 등 중요 문화재와 문화시설이 산재되어 있음.
한옥, 한식, 한지, 한소리, 한복, 한방 등 한국스타일의 대표 명소로 많은 예술인들의 주거 및 활동 지역임.

전주한옥마을의 유래

  • 을사늑약(1905년)이후 대거 전주에 들어오게 된 일본인들이 처음 거주하게 된 곳은 서문 밖, 지금의 다가동 근처의 전주천변이었다. 서문 밖은 주로 천민이나 상인들의 거주 지역으로 당시 성안과 성 밖은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성곽은 계급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존재했던 것이다.
  • 양곡수송을 위해 전군가도(全郡街道)가 개설(1907년)되면서 성곽의 서반부 가 강제 철거 되었고, 1911년 말 성곽 동반부가 남문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 됨으로써 전주부성의 자취는 사라졌다.
  • 이는 일본인들에게 성안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실제로 서문 근처에서 행상을 하던 일본인들이 다가동과 중앙동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1934년까지 3차에 걸친 시구개정(市區改正)에 의하여 전주의 거리가 격자화 되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서문일대에서만 번성하던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 1930년을 전후로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였다. 1930년대에 형성된 교동, 풍남동의 한옥군은 일본식과 대조되고 화산동의 양풍(洋風) 선교사촌과 학교, 교회당 등과 어울려 기묘한 도시색을 연출하게 되었다. 오목대에서 바라보면 팔작지붕 휘영청 늘어진 곡선 용마루가 즐비한 명물이 바로 교동, 풍남동의 한옥마을 것이다.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경기전

경기전

  • 경기전 정전에 봉안되어 있는 어진은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그린 초상화이다. 경주, 평양 등지에 봉안했던 여타의 어진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고 전주 경기전의 어진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 임금이 정사를 돌볼 때 차려입고 곤룡포에 익선관을 쓴 모습이다. 얼굴과 옷 주름을 처리한 음영기법, 의자와 자리의 화려한 색체, 어깨에 그린 용의 금박효과 등에서 높은 품격이 엿보인다. 한 왕조를 세운 인품과 위엄이 시대를 뛰어 넘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 태조 어진을 모신 곳으로 본전이라고도 하며 태종10년(1410년)에 세웠다. 경기전은 정유재란때 불탔으나 광해군 6년(1614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회랑을 두어 최고의 사당임을 나타냈다. 조선 왕조를 개국한 태조 어진이 봉안된 정전 기능과 품위에 기준한 엄격한 격식, 그리고 정전과 배례청 평면 조합 및 어방구조 등이 보물로서 문화재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08년 12월 국가보물 로 지정됐다.
전동성당

전동성당

  • 한옥마을 초입에 서 있는 소박하고 아담한 모습의 전동성당. 전동성당은 1791년 신해박해 때 윤지충(바오로)이 모친상 때 교리를 좇아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지내지 않자 당시 유림들의 극심한 비난을 받게 되었고 이에 윤지충과 관련된 권상연(야고보)이 참수형을 당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순교터이며, 호남의 모태 본당이 된 전교의 발상지이다.
    두 성인이 순교한지 1백년이 지난 1891년 봄, 순교터에 본당 터전을 마련해 전교를 시작했다. 초대 주임신부인 보두네 신부가 순교 1백주년을 기념해 1908년 건축을 시작, 서울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1914년 완공됐다. 착공에서 성전봉헌까지 무려 23년이 걸린 것이다.
  • 일제 강점기였던 당시 통감부는 전주에 새 길을 내기 위해 풍남문 성벽을 헐었는데 보두네 신부가 그 성벽의 돌들을 가져다 성당 주춧돌로 사용했다고 한다. 성당 지하에는 당시 썼던 주춧돌이 성당을 탄탄히 떠받치고 있다. 공사는 중국인 벽돌공 백여명이 동원돼 전주성을 헐은 흙으로 벽돌을 구웠고, 석재는 전북 익산의 황등산의 화강석을 마차로 운반해 왔다. 목재는 치명자산에서 벌목해 사용했다고 한다.
    전동성당은 완전한 격식을 갖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동서양이 융합된 모습이어서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 호남지방의 서양식 근대건축물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 화강석을 기단으로 사용한 붉은 벽돌 건물로서, 내부는 둥근 천장으로 되어있고 중앙의 종탑을 중심으로 양쪽에 배치된 작은 종탑들은 조화로운 입체감과 건물의 상승감을 더해준다. 비잔틴 풍의 종머리는 건물 본체와 잘 어우러져 사진촬영 명소로 도 각광받고 있다.
    성당 앞에 세워진 하얀 그리스도 상은 성당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한국 최초 순교터' 라고 새긴 기념비는 이 곳 전주의 아픈 천주교의 역사를 품은 전동성당의 존재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한복입은 현대인

한복입은 현대인

전주 한옥마을에서 즐기는 색다른 재미!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단체로 여행 온 학생들도 우리의 한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으며 머리에 꽃장식까지 더해져 형형색색 예쁘게 전주한옥마을 곳곳을 거니는 사람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활기차고 신나는 한옥마을은 감각적인 인테리어의 건물이 많아 온통 포토존이며 특히 태조 이성계 어진이 모셔져 있는 경기전 담벼락 앞에는 한복입고 사진찍는 인파로 북적인다. 현재 가장 순기능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한복체험 뿐만 아니라 복고 교복체험도 성행중이다.

야시장

야시장

남부시장 야시장은 남부시장과 인근 한옥마을, 풍남문 등을 연계하여 전주의 새로운 관광명소를 창출하고자 2014년 10월부터 개장.
다문화가정, 시니어클럽, 취약계층, 청년상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45개의 이동매대에서 풍성한 먹을거리, 즐길거리, 볼거리를 통해 전주 한옥마을과 연계하여 지역의 풍성한 관광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음.
야시장 무대에서는 하루 2회 공연이 열리며, 야시장 안내소에서 다양한 이벤트 참여가 가능.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 (남부시장 십자로 사거리 일대)
일시 :
매주 금·토 하절기(3월~10월) 19:00~24:00 / 동절기(11월~2월) 18:00~23:00 (운영시간은 변동될 수 있습니다.)
문의 :
남부시장상인회 063-288-1344
URL :
www.facebook.com/nbnightmarket/blog.naver.com/nbmarket
야시장 삼겹살김밥

야시장 삼겹살김밥

“삼겹살김밥 대박이네~”
오돌뼈를 제거한 삼겹살과 깨끗하고 싱싱한 야채들이 김밥에 들어가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남녀노소가 좋아할 삼겹살김밥!
삼겹살 쌈에 밥과 김을 말아 넣은듯한 느낌으로 한 줄 먹으면 배가 든든해집니다. 삼겹살이 두 줄이나 들어가는 곱빼기도 있으니 양껏! 취향껏 선택해서 드실 수 있습니다.

더 새우

탱글탱글 새우살에 바삭한 튀김옷 그리고 시원한 생맥주의 콜라보. 한 컵에 새우와 음료를 함께 먹을 수 있는 더새우!
바로 튀겨낸 따끈한 새우튀김에 소스를 듬뿍 올려주십니다. 칠리소스, 크림소스 두 가지로 선택하는 재미도 쏠쏠!
큼지막한 새우에 튀김옷이 더해져 뜨끈뜨끈 바삭한 식감이 살아있어요. 야시장에 앉을 공간이 없는데 더새우는 앉아서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어 편히 앉아 먹을 수 있습니다.

아짐손 불곱창갈비

아짐손 불곱창갈비

연탄불에 직접 구워내 불맛이 나는 아짐손불곱창갈비는 초벌에서 구운 뒤 다시 즉석요리를 하신다고 합니다.
탱글탱글 고소한 돼지껍데기와 쫄깃쫄깃 곱창, 불맛이 일품인 목살에 양파, 대파, 떡에 참깨까지 뿌려주시며 넉넉한 인심으로 듬뿍 담아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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