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 정인표는 1897년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소양면 대성동에서 출생하였다. 출생 시 태아는 일월포로 둘러 쌓였고 산실에는 향기가 가득하여 서기가 집안에 둘러 하늘에 닿았으며 등에는 수덕이라는 두 글자가 뚜렷하게 씌어져 있었다 한다. 9세때에는 서당에서 공부한지 수일만에 퇴학하고 말았으니 한자를 전혀 모르는 것은 불문가지였다. 1934년 전주 미륵암에서 수도 끝에 득도하였고 1938년 7월 15일 교도 이진호 집에서 신도공사를 강론하는 자리에서 일본에 死자를 붙이고 조선에 生자를, 소화에 落자를 각각 붙이고 일망무지(日亡無地)라 하였다. 즉 일본은 죽고 조선은 살고, 소화는 땅에 떨어지고 일본은 망한다는 뜻이었다. 천자는 선한 자에 복을 주고 악한 자에 화를 주나니 일본은 결국 패망한다.
그러나 당시 첩자였던 김병환의 밀고로 1940년 12월 15일 김제경찰서에 체포되어 왜황실불경죄륙해군형법 치안유지법위반(倭皇室不敬罪陸海軍刑法 治安維持法違反)을 적용하여 8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광복 후 1950년 2월에는 교당을 세웠으며 1951년 명륜고등공민학교를 인수하고 1954년 3월 25일에는 명륜고등공민학교를 태인기술학교로 개칭했다. 이 자리는 태인면 태흥리 도창치로 조철제의 무극교가 자리하고 있었던 곳이다. 교당 내 성전인 대성미륵대장전에는 중앙에 미륵불, 좌측에 석가불, 우측에 공자의 3성을 봉안하고 구천미륵불하강지위, 석가여래불응감지위, 대성지성문선왕응감지위라는 위패를 모셨다. 수덕전에는 정인표를 동상으로 모시고 주세아미타불이라는 신표가 모셔져 있다. 이외에 보살전, 명부전 그리고 칠성전과 관리실이 있다.
출처_정읍시문화관광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