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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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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922)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3길 33
문      의
일반전화 : 063-0640-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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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으로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20호로 지정되었다. 1619년(광해군 11년)에 창건되고 1686년(숙종 12년) 임금이 친필로 현판을 하사해 사액서원(賜額書院)으로 승격된 서원중 최고의 서원이다. 당시 남원부 48방중의 지사방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임실군으로 편입되었다. 이 서원은 48방내의 30여 서원 중에서 유일한 사액서원이었으므로 권위가 높아 우수한 학자들이 멀리서까지 몰려 왔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액 서원 중 최고의 서원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으로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20호로 지정되었다.

 

1619년(광해군 11년)에 창건되고 1686년(숙종 12년) 임금이 친필로 현판을 하사해 사액서원(賜額書院)으로 승격된 서원중 최고의 서원이다. 당시 남원부 48방중의 지사방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임실군으로 편입되었다. 이 서원은 48방내의 30여 서원 중에서 유일한 사액서원이었으므로 권위가 높아 우수한 학자들이 멀리서까지 몰려 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다른 일반서원과 같이 1868년(고종 5년)에 헐었다가 해방 후 후손들이 재건한 것이다. 헐기전의 건물로는 사우 3칸, 신문 1칸, 동서협문 각 1칸, 전사고 1칸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우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강당 및 3문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 서원은 중종 때 기묘사화에 희생된 사제당 안처순을 주벽으로 하여 정환, 유헌, 정황, 활계 이대빙 선생이 배향되어 있다.

 

훼철되기 전에는 사우(祠宇) 3칸, 신문 1칸, 동서협문 각 1칸, 전사고 1칸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사우와 강당 및 3문만이 남아 있다. 4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사우는 맞배지붕에 겹처마 건물이다. 기둥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으며, 중앙에는 상부가 교창(交窓) 형식으로 된 사분합문을 달았는데, 좌우측에는 같은 형식의 2짝 10개의 분합문이 있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되었으며, 공포와 공포 사이에는 화반 1개씩을 놓았다.

 

원내 각종 행사와 유림의 회합, 학문강론 장소로 사용되는 강당은 맞배지붕, 홑처마이고, 기둥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가구(架構) 형식은 대들보 위에 짧은 동자기둥을 놓고, 종보를 올린 다음 종마루를 받치는 사다리꼴의 대공을 얹었다. 매년 2월과 8월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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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시간 : 주차시설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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