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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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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남고산성1길 159-9 (동서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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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전화 : 063-222-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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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묘는 1984년 4월 1일에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다. 주왕묘(周王廟) 또는 관제묘(關帝廟)라고도 불린다. 남고산성의 만경대(萬景臺) 남동쪽에 자리하며, 중국 촉한(蜀漢)의 장수 관우(關羽)를 무신(武神)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조선시대 사당 관성묘는 1984년 4월 1일에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다. 주왕묘(周王廟) 또는 관제묘(關帝廟)라고도 불린다. 남고산성의 만경대(萬景臺) 남동쪽에 자리하며, 중국 촉한(蜀漢)의 장수 관우(關羽)를 무신(武神)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이 관성묘는 1895년(고종 32) 전라도관찰사 김성근(金聲根)과 남고별장(南固別將) 이신문(李信文)이 각처 유지들의 헌금을 받아 건립한 것이다. 30m 높이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중앙에 본전이 있고 좌측에 서루, 우측에 통무가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본전 네 기둥에 유려한 필체로 장수 관우를 봉안한 목적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말기의 화가 소정산이 그린 《삼국연의도》 10폭 그림과 관우의 소상(塑像)이 안치되어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를 무신으로 관성묘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를 무신으로 받들어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초부터 관왕묘를 건립하여 일반 서민에게까지도 그 신앙이 전파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 정유왜란 때 명나라 군사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중보문헌비고>에 따르면 임진정유난에 전투가 있을 때 자주 관왕의 영혼이 나타나 신병이 명나라 군사를 도왔다고 하는데, 명나라 장수들이 관왕묘를 건립하는 데 힘쓴 것은 아마도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전주의 관왕묘는 고종 10년(1884년)에 남고산성별장 이신문과 전라관찰사 김성근의 발기로 세워졌다. 광무 3년 봉심사로서 건지산의 시조묘 검분차 내려왔던 이재곤의 상주로 수년 전 전주에 관왕묘가 창건되었음을 알고, 고종은 향축봉송절차를 남원 강진의 예에 따라 시행하도록 본도에 명령을 내려 연 2회 춘추로 관에서 제사를 행해 왔다. 융희원년 궁내부의 사전이 폐지됨에 따라 완전히 민간 유지에 의한 관리로 넘어가 오늘날에는 관우를 숭배하는 몇몇 수호인에 의해서 유지되어 왔다. 관성묘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자형 집으로 되어 있으며, 관우와 제갈공명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또한 좌우의 나무창살로 된 건물의 집은 삼국지를 그림으로 그려 놓았다고 한다.   <!- - Not Allowed Tag Filtered - -><!- - Not Allowed Tag Filtere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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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쉬는날 : 무휴
  • 체험가능연령 : 전 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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