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검색하기

로고

전체메뉴

전라북도 토탈관광

영어 일본어 중국어
151020289123766.jpg

두승산성

★★★★★ 후기 0

위      치
[지번]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입석리 산21
QRCODE

고부(古阜)지방은, 예로부터 서해안(西海岸)의 정치(政治) 군사(軍事)의 요충지(要衝地)로, 삼국시대(三國時代)부터 축성(築城)의 기록(記錄)이 있다.

본 두승산성(斗升山城)은 서기 18년 백제(百濟) 온조왕(溫祚王) 36년에 쌓았다고 하는, 백제(百濟) 오방성(五方城)의 하나인 승고산성(升高山城)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두승산 남쪽으로 선인봉(仙人峰)이 솟아있고, 선인봉 남록(南麓)으로 고려시대(高麗時代), 영주(瀛州) 관할부(管轄府)의 소재지(所在地)였던 곳이 현 고부 입석리이다.

 

산성(山城)은 선인봉 남쪽 정상(頂上)에 석성지(石城址)가 있으며, 이 석성(石城)은 선인봉(仙人峰)과 두승산(斗升山) 골짜기에 걸쳐, 석성(石城)으로 쌓아져 있고, 서북(西北)쪽으로 지형(地形) 그대로가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城) 둘레는 1만8백11척 이라고 하여 두승산은 관아(官衙)가 있는 읍성(邑城)이 아니라, 산성(山城)으로 군사적(軍事的)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고부군 산천조(古阜郡 山川條)에 "두승산(斗升山) 재군동 오리(在郡東 五里) 재고석성(在古 石城) 주10812척(周一萬八百十二尺) 과우대학(跨于大壑) 영주시구성야(瀛州時舊城也)"라 하였다.

 

문헌비고(文獻備考)도 "승고산성(升高山城)" 이라고 하였다.

정조(正祖)때 편찬한 고부읍지(古阜邑誌)에는 "두승산(斗升山) 재동 오리(在東 五里) 고칭도순(古稱都順) 우칭영주산(宇稱瀛州山) 산유구봉(山有九峰) 그 최고봉 유석 두석승(其 最高峰 有石 斗石升) 고명이두승산(故名以斗升山)" 이라 하였다.

세종지리지(世宗地理誌) 고부군편(古阜郡篇)에 "진산도순(晉山都順) 재군동오리(在郡東五里)" 라하여 두승(斗升)이라는 이름은 최고봉이 있던 석두석승(石斗石升)에서 비롯 되었다고 했는데, 조선조성종대(成宗代)에 이미 두승(斗升)이라는 이름이 생겼던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석두석승(石斗石升)을 어느 철모르는 초동(樵童)이 산(山)아래로 밀어 떨어뜨려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는데, 그것은 물리적(物理的)으로 불가능 할 뿐 아니라, 사실과 크게 다르다.

석두석승(石斗石升)은 태고(太古)에서 지금까지 두승산(斗升山)의 상징(象徵)으로, 그곳에 의연(毅然)히 있는 것이다.

산성(山城)의 축조(築造) 연대는,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영주시구성"(瀛州時舊城)이라고 했고, 문헌비고(文獻備考)에는 "삼한시석축"(三韓時石築)이라고 하였으나, 성(城)의 규모나 측정법으로 보아 삼한시대(三韓時代) 같지는 않고, 성안(城內)에서, 백제계(百濟系)의 토기편(土器片)이 나오기도하나, 대부분 고려시대(高麗時代)의 토기편(土器片)과 와편(瓦片)이 발견됨으로, "영주시구성"(瀛州時舊城) 이라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영주(瀛州)라는 이름은 고려(高麗) 태조(太祖) 19년에 고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유선사(遊仙寺)가 있는 서북단(西北端)은 그 자체가 산성(山城)이며, 거기에는 백제계(百濟系) 토기(土器)가 나오고 있음으로 백제시대(百濟時代)에도 작은성을 설치할 가능성도 있다.

 

금서룡(今西龍)의 서부지방여행기(西部地方旅行記)에는 옛 노인(古老)들의 이야기에 영주시대(瀛州時代)의 주치(州治)는 입석리에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 입석리에는 그런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이전

다음

  • 151020289123766.jpg
  • SUB1.jpg
  • 전라북도시도기념물+제54호+두승산성%28斗升山城%29.jpg

주변관광지

등록된 후기가 없습니다.

작성자/비밀번호 입력 비밀번호
별점 입력
  • ★★★★★
  • ★★★★
  • ★★★★★
  • ★★★★★
  •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