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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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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번]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모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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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지역의 금광 및 사금채취지역은 모악산을 중심으로 한 산악권과 모악산에서부터 펼쳐지는 평야부가 주로 채굴되는 곳으로 금산면, 황산면, 금구면, 봉남면 일원은 한국판 골든러쉬 지역으로 금(金)과 관련한 지명을 볼때도 과거 금의 고장임을 알 수 있다.
현재 금광과 사금채취는 경제적 여건과 채산성이 낮아 10여년 전부터 채굴을 하지 않고 옛 이야기로만 전해지고 있는 실정이며 과거 노무자로 종사한 세인들도 진폐병이나 건강악화로 생존자를 찾아보기가 쉽지만은 않으나 70대 이상 노인들은 금과 얽힌 사연들이 오늘 일처럼 막걸리 가게에서 화제가 되기도 한다.  
일제때 일본은 한국경제수탈을 위해 전국의 지질조사와 광산조사를 폭넓게 실시하여 광산을 개발했으며, 특히 30년대 이후로는 금광과 광산을 제국주의 침략세력화 확산을 위해 집중적으로 개발하였다.
당시 금구광산에서 노무자로 종사했던 금구면 양석마을 이판돌씨(76세)의 말에 의하면 그당시 김제지역 광산은 9군데가 있었고 징병을 피하기 위해 한국인(광산당 300-400명)이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었고 광산의 깊이는 지하 120m, 길이 700-1,000m였다한다.
광산에서는 금맥을 찾은 광석을 채취하여 트럭으로 전주로 옮겨 철도를 이용 장항제련소로 이동시켜 금을 정제하였다.
사금채취는 함금사니(含金砂泥)를 넣은 다음 물속에서 전후좌우로 흔들면 가벼운 토사는 제거되고 무거운 금만 남게되고, 대규모로 채취할때는 채금선을 사용했으며, 사금은 기계를 동원하여 채취하여 광산처럼 많은 노무자가 필요치 않았다.
전해지는 일화는 사금을 입에 삼킨 후 대변을 본 후 물에 세척하거나 도시락을 먹지 않고 밥알속에 숨겨 금을 모은 사람도 있고, 적발시에는 일본인에게 갖은 고초를 당하고 즉시 해고 되기도 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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