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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용계리 청자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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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용계리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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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지는 용계리의 아산댐 뒤쪽 동일계의 구릉에 위치하고 있는데, 1983년 퇴적구릉을 원광대학교 마백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발굴은 44개의 구릉 중에서 최남단의 퇴적구릉 1기와 그 주변 건물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개의 가마가 중첩되어 발견되었다. 중간의 가마가 38m, 최후의 가마가 14m, 가마폭은1.1m의 긴 등요(登窯)로 가마 바닥은 경사진 면을 갑발(匣鉢)로 받쳐 수평을 이루었고, 가마벽과 천장은 돌과 점토를 섞어 쌓아 올렸다. 이 가마와 함께 주변의 작업장과 건물지도 확인되었으며, 출토 유물은 접시‧완‧대접‧전접시‧화형접시‧대발‧대합‧병‧매병‧광구병편(侊口甁片)‧호(壺)‧주전자‧장고‧유병‧향로‧탁잔(托盞)‧방울‧문형기(門形器)‧개(蓋)‧등 다양하며, 이중 접시‧대접‧완류가 가장 많다. 특히 완은 굽의 폭이 넓고 낮은 햇무리굽에 직립한 구연의 모습으로 중국 월주청자(越州靑磁) 것과 유사하여 용계리 요지는 월주청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주목된다. 이들 청자의 문양으로는 음각의 기법이 대부분으로 운문(雲紋)‧연판문(蓮瓣紋)‧수목문(樹木紋)‧앵무문(鸚鵡紋)‧초화문 등이 시문 되었다. 양각 기법을 보이는 것은 연팜눈 등이 있다. 청자의 태토(胎土)는 회백색으로 밝으며, 유약은 담녹색과 연청색을 띠고 있다. 굽바닥에는 회백색의 내화토 받침이 이용되었다. 가마 용구로는 원통형의 갑발받침‧대(臺) 등이 있다. 건물지에서는 무수한 어골문(漁骨紋)의 평기와편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태평임술(太平壬戌:1022년)명의 명문와편이 건물지와 조사된 중층 요지의가마벽에서 동일계의 평기와편이 발견됨으로서 초기 청자요지 중에서 유일하게 절대연대가 밝혀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시기라고 판단되는 초기 청자요지는 강진 용운리 제9‧10호 요지와 용인 서리요지 등이 있다. 이 용계리 청자요지는 10세기 전반 경부터 11세기 전반 경까지 운영되었는데, 출토된 도편 등을 통해볼 때, 고려 지배층의 요구에 따라 당말오대(唐末 五代) 시기에 중국 철강성의 월주요로부터 오월국(吳越國)의 제도기술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고려 귀족사회의 발달에 따라 11세기 전반 경에는 비교적 세련된 각종의 청자를 만들다가 11세기 후반 경에는 줄포만을 건너 부안 진서리‧유천리 일대로 옮겨 강진과 함께 고려 청자의 대표적 생산지로 발전해 갔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곳 용계리 청자요지는 고려 청자의 기원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이다. 발견된 청자가마의 구조와 관리사‧작업장 등으로 보여지는 건물지, 토기요지와 함께 최대의 퇴적층을 간직한 곳으로 고려 도자사 연구에 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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