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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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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정보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 산39
여행후기
☆☆☆☆☆ (0)건

하늘이 효성에 감동하여 만들어준 샘, 효감천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에는 극진한 효성에 하늘이 감동해서 내려준 효감천(孝感泉)이라 불리는 효자 샘이 전해온다. 효감천은 효를 상징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샘물로 경주 분황사 삼룡변어정(三龍變魚井)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둘밖에 없는 문화재로 지정된 가로 137㎝, 세로 129㎝, 깊이 170㎝의 우물이다.

조선 중종 때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 34권에는 효자샘에 얽힌 이야기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오준(吳俊 : 동복 오씨 세보에서는 吳浚으로 전한다)은 아버지가 종기를 앓고 있는데 입으로 빨았고, 병이 위태해서는 똥을 맛보았으며, 죽게 되니 몹시 슬퍼하면서 예를 다했다. 이 일이 나라에 보고되어 정문을 세웠다."

오준은 어려서부터 독실한 자품에 학업에 열성을 다하고 예절을 숭상하여 왔으며, 특히 효동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28세 되던 해에 부친이 등창병으로 백약이 무효하자 3일간 입으로 환부 피고름을 빨아냈다. 차차 나아지던 병환이 합병으로 위급해지자 병세를 알아보기 위해 대변을 맛보고 자신의 대퇴부 살을 베어 약으로 바치는 등 정성을 다했으나 끝내 부친을 여의는 슬픔을 당했다. 극진히 예를 다하여 장례식을 마치자 모친이 병환이 들어 눕게 되었다. 지성으로 간호했으나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봉양해 4일간 연명시켰으나 운명하셨다.

부모 섬기기를 최대의 덕목으로 삼았던 조선 유교 사회에서 이 정도의 효자는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오준이 효자 명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살아생전 못지않게 시묘살이는 신비한 호구동정(虎狗同庭)전설과 함께 전해온다. 잇달아 부모를 잃은 오준은 묘 아래에 여묘막을 짓고 조석으로 시묘하였다. 하루에 죽 한 그릇만 먹고 소금과 간장은 입에 대지 아니하니 온몸에 흰 털이 솟아났다고 한다. 여묘막으로 호랑이가 내려와 집에서 따라온 개와 함께 거했는데 매월 삭망(15일)마다 호랑이는 사슴을 잡아와 제수로 바쳤다.

여묘막 근처에 맑은 물이 없어 5리밖에 있는 산중턱까지 새벽마다 물병을 메고 물을 길어 나르니 손발이 붓고 터졌다. 마침내 그의 정성에 하늘이 감동하여 청천백일에 뇌성벽력이 진동하더니 여묘막 앞에 맑은 샘물이 솟아나오기 시작했다. 이 소문을 들은 고을 원님이 달려와 인부를 동원하여 샘을 돌로 쌓아주고 효감천이라는 비를 세웠다.

하루는 운이(雲伊)라는 여인이 샘에 와서 빨래를 하다가 벼락을 맞아 즉사한 일이 생기자 효감천은 경외의 대상이 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함부로 접근하지 못했다. 어느날 오준의 꿈에 호랑이가 나타나 백암 마을(지금의 전남 장성군 북일면)에서 함정에 빠져 죽게 되었으니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상복 차림에 상장을 짚고 새벽길을 30리나 달려가니 수많은 사람들이 창칼로 호랑이를 죽이려 했다. 오준이 큰 소리로 "내 범을 해하지 말라"하니 마을 사람들이 "당신의 범이면 저 함정에 들어가라"했다. 오준이 함정에 들어가자 호랑이는 주인을 만난 개처럼 꼬리를 치며 반가워했다. 호랑이 등을 타고 여묘막에 돌아오자 이 소식을 들은 현감이 나라에 보고했다.

성종은 통선랑 군자감 직장(通善郞 軍資監 直長)의 벼슬을 내리고 복호(復戶 : 조선시대에 충신이자 절부에게 사역과 밭세 이외의 잡부금을 면제하던 일)를 내렸다. 효자 오준은 1444년(세종 26년)에 신림면 외화리에서 태어나 1494년(성종25년)에 세상을 떠났다. 오준이 51세로 죽자 성종은 정려를 내리고 예조에서는 제문을 지어 향사에 모시고 불조전을 명했다. 그 후 유림들이 오준의 효를 추모하여 사당을 짓고 사당의 명칭을 의논하던 중에 벌레가 대나무 잎에 창효(彰孝) 두 글자를 새기니 이로 인하여 창효사(彰孝祠)라 정했다.

후손들은 해마다 정월 보름과 10월 보름에 제를 지내며 감천 선생을 기린다. 또한 4월 초엿새, 8월 초엿새에는 샘을 청소하며 효를 이어간다. 우물(샘)로서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국내에서 이곳 효감천(孝感泉)과 호국변어정(護國變魚井) 또는 삼룡변어정(三龍變魚井)이라 불리는 경주분황사 석정(경북 문화재 자료 9호) 2곳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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